관세는 왜 "없던 일"이 됐을까?
아메리카노 뉴스레터 4/11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를~
어제 오후부터 오늘 내내 제 머릿속에 가장 많이 떠오른 노랫말입니다. 물론 노영심이 짓고 스윗소로우가 부른 저 노래의 노랫말은 슬픈 사랑 이야기지만, 저는 트럼프 대통령을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문득 저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눈을 떼지 않고 계속 귀를 기울이며 뉴스를 전하는데도 자꾸 트럼프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에 관한 전망은 번번이 빗나갑니다. 기존의 관례를 워낙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는 사람이라서, 정상적인 범주에서 행동을 예측하면 절대 맞힐 수 없어서 그렇다는 변명도 일리가 있겠지만, 성에 차지 않네요.
당장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유예를 발표했을 때 의회에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관세를 유예한다고 발표한 지 약 20분 지나 스티븐 호스포드 의원이 대통령이 관세 유예한 사실 알고 있느냐고 묻자 그리어 대표는 “몇 분 전에 알았다. 원래 논의 중이었다”고 얼버무렸습니다. 행정부 안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가 공유되지 않다 보니, 모두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튼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는 진짜다! 절대 타협이란 없다.”던 으름장을 또 가볍게 뒤집으면서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 나라에 부과했던 상호 관세를 대대적으로 유예했습니다. 이번에는 다를 거라고 생각하고 관세를 분석하고, 주말판을 구상하던 저는 또 속고 말았습니다.
앞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예측하는 일은 더더욱 신중해야겠다는 다짐을 또 하며, 우선 오늘은 트럼프 대통령이 왜 관세를 전격적으로 철회했는지 미국 언론이 내놓은 분석을 소개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대적인 관세를 발표한 이유를, 맥락을 곁들여 차분하게 잘 설명했다고 판단해 무려 뉴스레터 세 편에 걸쳐 베센트 장관의 인터뷰를 소개했건만, 베센트 장관과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관세 계획을 통째로 엎어버린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두둔하기 바빴다.
베센트 장관은 “처음부터 이 모든 게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This was his strategy all along)”이라고 말했고, 옆에 서 있던 레빗 대변인은 “이게 바로 트럼프 대통령다운 ‘협상의 기술’인 걸 왜 보고도 다들 모르는 거죠?”라고 말했다. 어제 뉴스레터 제목으로 썼듯 이제 트럼프는 “양치기 소년 삼진아웃”이 돼 세상의 신뢰를 더 크게 잃었지만, 그러든말든 트럼프가 잘못했다고 하는 건 철저히 금기시된 지록위마 정권의 참모들답게 트럼프 체면 세워주기에 급급했다.
주요 언론은 특히 ‘월스트리트의 백악관 비상 민원처리반장’ 역할을 맡고 있는 베센트 장관에게 4월 2일 관세 발표 이후 금융계와 재계의 수많은 항의 전화가 빗발쳤을 거고, 베센트가 이를 모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하면서 경기 침체가 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고 보고 있다. 처음엔 ‘잠깐의 조정’을 거칠 뿐이라며 주식시장을 포함한 금융 시장의 신호를 애써 일축했지만, 뒤에서는 상황을 면밀히 살피고 있었다는 분석이 맞아떨어진다. (거기에 오늘 편지 뒤에 살펴볼 사실상의 내부자 거래로 ‘우리편’ 부자들의 배 불려준 건 덤이었다.)
Yippy
다들 아야(yippy)! 하면서 겁들 먹고 하도 소란들을 피우길래, 그래서 그런 거예요. 아니, 물론 시장이 괜찮긴 하겠죠. 별문제 없죠. 다 잘 되긴 할 텐데, 아무튼 그래서 그랬어요.
처음 보는 단어였다. Yippy. 정확한 뜻보다도 감탄사로 쓰이는 말이었다. 기분 좋을 때는 “야호!”, 또는 “앗싸!”로 번역할 수도 있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한 저 말 가운데 나오는 yippy는 다들 덜컹하면서 “아야!”라고 걱정했다고 옮기는 게 더 정확하겠다.
그러니까 베센트 장관이 나서서 처음부터 다 계획된 전략인 것처럼 기껏 포장해 놓았는데, 정작 대통령이 다시 나와서는 주식시장을 비롯해 경제가 실제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신호를 확인하고 관세를 유예했다고 에둘러 인정한 거다.
시장의 신호를 얼마나 자세히 분석해 보고가 올라갔는지 알 수 없고, 트럼프가 그 신호들을 얼마나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더 의심스럽지만, 아무튼 주식시장이나 소비자 물가처럼 그래프 방향만 보여줘도 트럼프를 설득할 수 있는 지표들이 많았고, 그 지표들이 관세 발표 이후 한결같이 불안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에 트럼프는 시장이 폭락하고 요동치며 대혼란이 오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관세는 그대로 간다!”고 외쳐댔다. 이때만 해도 이번에는 진짜 다르다는 분석이 나오고, ‘재선 걱정이 없다’거나 ‘주요 참모 가운데 자유무역을 신봉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등 다양한 이유가 꼽혔는데, 사실은 이번에도 트럼프는 끝내 시장 전체를 원하는 대로 주무르고 조작하지는 못했다. 뉴욕타임스 백악관 출입기자 조나단 스완은 데일리 팟캐스트에서 이렇게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석에서 누차 하던 말 중 하나가 “허버트 후버처럼 기억되기는 정말 싫어.”예요. 후버는 어쨌든 대공황을 불러온 장본인으로 기억되잖아요. 물론 대공황이 온 데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있었지만, 아무튼 자기 임기 내에 경기 침체에 접어드는 건 절대 그냥 두고 보지 않을 겁니다.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
주식시장이나 소비자 물가 말고 트럼프 대통령을 실제로 불안하게 한 숫자로 꼽히는 게 바로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다.
국채 수익률은 정부가 자금을 모을 때 지급해야 하는 이자가 되므로, 수익률이 오르면 정부가 돈을 비싸게 빌리게 되는 달갑지 않은 상황이 된다. (베센트 장관은 터커 칼슨과의 인터뷰에서 “1bp(0.01%)가 내릴 때마다 정부가 자금을 조달할 때 10억 달러를 아낀다”고 말했다.)
국채 수익률이 오르면 주택담보 대출 금리를 비롯해 국채 금리에 직간접적으로 연동된 금리들이 다 오른다. 자연히 소비자 물가도 오르고, 연준에 기준 금리 인하를 틈만 나면 압박하는 트럼프 대통령도 그럴 수 없게 된다.
당장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문제지만,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미국 국채의 인기가 떨어진다는 건 장기적으로 미국 경제에 대한 신용도 낮아진다는 뜻이다. 물론 그렇다고 미국이 파산할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어쨌든 트럼프가 관세를 가지고 시장을 들었다 놨다 ‘양치기 소년’처럼 행동한 것이 미국 경제의 신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건 확실해 보인다.
“똑똑한 사람은 지금이 돈 벌 기회!”
놀랍게도 트럼프가 관세 카드로 시장을 하루에도 몇 번씩 뒤흔들면서 틈만 나면 한 말이다. “지금이 저점 매수할 절호의 기회”라는 말을 주식시장 유튜버가 했다면 모를까 대통령이 한 것도 기이한데, 정작 미국 사람들이 이를 두고 “트럼프가 트럼프 했네, 어휴…” 정도로만 말하고 그냥 넘어가는 건 어떤 의미에서 더 이상하다. 너무 한국적인 관점인지 몰라도.
한국 언론이나 대중의 정서에 비하면 미국은 위정자와 그 인척들의 개인적인 부패 문제에 관심이 없거나 너그러운 것 같다. 정치인보다 돈을 훨씬 더 잘 벌 수 있는 길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고, 부자가 되려고 정치에 뛰어든 사람이 많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다. 아니면 비리나 부패를 저질러도 이를 밝혀낼 길이 사실상 없다 보니 대중이 까마득하게 모를 수도 있다. 어쨌든 이 모든 요인이 합쳐져 지금껏 정치인, 특히 대통령은 윤리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선을 넘지 않았다. 그런데 트럼프는 이 모든 기준을 바꿔놓았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 그동안 별러 온 원수에게 복수하는 것도 열심이지만, 동시에 가족, 인척을 포함해 확실한 자기편은 ‘큰돈’ 만질 수 있게 하는 데도 거침이 없다.
관세로 주식시장이 혼란에 빠진 뒤에는 백악관을 찾은 나스카(NASCAR) 선수들과 글로벌 금융회사 찰스 슈왑의 창업자이자 회장인 찰스 슈왑을 소개해 주면서 한 말이 논란이 되고 있다. 영상을 보면 트럼프는 슈왑을 가리키며 “이 사람 이번 주식시장 요동칠 때 20억 달러 벌었잖아. 대박이지!”라고 말하고, 옆사람을 가리키며서는 “이 사람도 9억 달러 벌었고.”라고 말한다.
위기에 대비해 투자 포트폴리오를 잘 짜서 혼란을 피해 가고 이익을 거둔 거라면 박수받을 일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대표적인 후원자이자, 손녀 사만다 슈왑은 재무부 차관보인 찰스 슈왑이 20억 달러를 버는 과정에서 미리 알아서는 안 되는 정보라도 있었다면 큰 문제가 된다. 이를 의식한다면 최소한 조심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지만, 트럼프에겐 그런 게 없다.
어제도 관세 유예를 발표하기 약 4시간 전에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지금이 내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 주식(DJT) 사기 아주 좋은 타이밍!”이라고 올렸다. 시세 조작으로 수사를 받고 처벌받을 수도 있는 행동이지만, 이미 대법원이 대통령의 통치 행위는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아주 모호하고 광범위한 ‘선제 사면’을 판결한 상태라 그런지 트럼프는 거칠 게 없다.
트럼프의 말 한마디가 전 세계 경제를 뒤흔드는 마당에 행정부의 행보를 미리 알고 이에 맞춰 돈을 버는 이들이 있는지, 있다면 누구인지는 아마 영원히 밝혀지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의혹은 필요하지 않을까?
MAGA를 위한 관세도 아니었다
스캇 베센트 장관의 인터뷰를 사흘간 상세히 소개한 이유 중 하나는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 주류 세력의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 인식에 대한 베센트 장관의 비판 중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서였다. 민주당은 빈부격차를 좁히고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제대로 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고, 당내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를 오히려 억눌러왔다.
그렇다면 이제 대통령으로 돌아온 트럼프는 자신을 뽑아준 지지층에게도 경제적인 혜택이 돌아가도록 선물을 줄 수 있을까? 관세도 제조업의 부흥을 이끌어 다시 대다수 미국인이 풍족하게 살 만한 경제를 구축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베센트 장관을 비롯한 트럼프 행정부는 주장해 왔다. 정말 그런가?
결국, 대대적인 상호관세는 시행 몇 시간 만에 (90일 유예됐다지만) 사실상 없던 일로 된 만큼 정확한 효과를 논하기 어렵다. 어차피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예정이었고, 그 전에 금융 시장이 불안해지며 물가도 오르고, 경기 침체 전조가 뚜렷해지는 시나리오가 펼쳐졌다면 트럼프는 아마 관세 카드를 언제든 접었을 것이다. 즉, 관세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엄청난 이득은 영영 검증할 수 없는 주장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지난 일주일간 확실한 이득을 본 사람들은 (우연히도) 트럼프와 가까운 극소수 부자 투자자들에 불과하고, 대다수 미국인은 지난 대선에서 누구를 뽑았는지에 상관없이 손해를 봤다. 연금 생활자들부터 대출 이자, 의료비, 장바구니 물가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의 상황은 다 같이 불안해졌다.
세계화와 기술 발전, 금융 자본주의의 고도화는 승자와 패자를 뚜렷하게 갈라놓았다. 패자의 절망을 외면한 민주당과 공화당 내의 전통적인 세력은 트럼프라는 포퓰리스트에게 권력을 내주고 말았다. 유권자들이 트럼프를 두 번이나 선택한 건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이제는 두 번째 임기에도 예상대로 통합에는 관심이 없고, 오히려 더욱 분열적인 정치를 펴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나누는 승자와 패자의 경계선은 공정한지도 따져봐야 한다. 더 많은 사람의 삶이 전보다 나아졌나? 트럼프식 ‘자원의 권위적 배분’은 합리적인가? 사실 여기에 대한 내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 미국 유권자들의 결정이 결국 중요할 뿐이다. 하지만 내 예상을 해보자면, 다음 중간선거가 다가올수록 삶이 더 팍팍해진 사람들은 트럼프 지지층에서 이탈할 수 있다.
물론 트럼프는 원하는 대로 관심을 끌고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개인적인 카리스마와 인기 덕분에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층’도 두텁다. 여론뿐 아니라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돈을 벌며 사업을 키우고 그 과정에서 분란이 일어나도 처벌받지 않고 요리조리 피해 온 경력도 화려하다.
하지만 트럼프가 자랑스럽게 말하는 ‘협상의 기술’은 늘 누군가를 희생시키고 그 이익을 빼앗는 구조였다. 자기 사업 키우고, 자기 주변 사람들 돈 버는 것까지는 가능할지 몰라도 시장 전체를 관리하고 공정하게 운영해야 하는 역할을 맡기에는 공적인 의식이 너무 부족하고 충동적이며, 그래서 위험한 인물이다. 그 사실이 지난 일주일 넘게 지속된 관세 롤러코스터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됐다.
관세를 둘러싼 논쟁, 혼란은 머지않아 또 다른 의제로 덮여 잊힐 가능성이 큽니다. 하원은 오늘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대대적인 정부 지출 삭감을 포함한 예산안을 통과시켰고, 트럼프 행정부는 대대적인 감세 정책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며, 트럼프 대통령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기준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압박을 연준에 계속해서 넣고 있습니다.
지난 일주일 남짓 관세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을 총정리한 에피소드는 예정대로 짝꿍 유혜영 교수와 녹음해서 월요일까지 팟캐스트로 올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