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풋"은 없다?
아메리카노 뉴스레터 4/7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홍수를 일으켜 일대를 다 잠기게 하라” 정도가 되는 말이죠. 이번 트럼프 행정부의 언론 대응 전략을 일컫는 말로 자주 쓰이는데, 맥락을 고려해 의역하면, “정권에 불리한(나쁜) 문제가 생기면, 더 큰 뉴스를 만들어 덮어버려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지난주에 도입부만 써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단톡방” 이야기도 마무리해야 하는데, 그 사이에 트럼프 대통령과 행정부는 벌써 ‘시그널 게이트’를 몇 년 전 일처럼 느껴지게 할 만큼 많은 뉴스를 쏟아냈습니다.
가장 파급력이 크고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 뉴스는 역시 지난 2일 발표한 대대적인 관세입니다. 세상은 관세 폭풍과 그 여파, 피해, 혼란을 각자 방식으로 흡수하고 있고, 대통령의 목표를 파악하기 위해, 또 앞으로 전 세계 경제가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위해 모두가 분주합니다.
관세 발표 이후 전 세계 증시가 일제히 하락하는 가운데, 우리나라 주식시장도 오늘(7일)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출발했습니다. 원래 지난 2월과 3월,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와 캐나다를 상대로) 관세를 발표했다가 돌연 유예한 가장 큰 이유로 꼽혔던 것이 화들짝 놀라 주저앉으려던 주식시장 때문이란 분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적어도 주말 동안 보인 모습만 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쉽사리 철회할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어디로 갈지 분석하기 위해 소개할 만한 기사, 자료, 인터뷰 등을 찾다가 전 폭스 뉴스 앵커이자 폭스에서 쫓겨난 뒤엔 잘나가는 유튜버가 된 터커 칼슨이 스캇 베센트 재무장관을 인터뷰한 영상을 보게 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나 지난주 뉴스레터에 잠깐 언급했던 피터 나바로 백악관 경제 고문의 말은 장황하고 요점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데, 베센트 장관은 (칼슨의 우호적인 태도도 한몫했겠지만) 차분하게 답변을 이어가 트럼프 행정부의 의중이 무엇인지 들여다볼 만한 지점이 꽤 있었습니다. 베센트 장관의 말 가운데 인상적인 언급들을 모아봤습니다. 오늘 다 담지 못한 내용은 다음 뉴스레터에서 이어가겠습니다.
주식시장의 풋옵션(put option)에서 유래한 말로, 주가가 크게 내릴 때를 대비해 보험용으로 풋옵션을 사놓기도 하는 데서 비롯된 용어다. 풋옵션은 정해진 날짜에 특정 가격에 주식을 팔 수 있는 권리다. A 주가가 현재 1만 원인데, 한 달 뒤 주당 9천 원에 팔 수 있는 풋옵션을 사면, 주가가 내려 8천 원이 됐을 때 손해를 반으로 줄일 수 있다.
원래는 시장이 하락할 때 연준이나 연준 의장이 나서서 금리에 대한 다양한 시그널을 줌으로써 하락을 막거나 그 속도를 늦춰주는 연준 풋(Fed put), 파월 풋(Powell put) 같은 말이 더 자주 쓰였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1기 때도 주식시장을 자신의 경제 성적표이자 경기 부양의 바로미터로 삼았던 데서 “트럼프 풋”이란 말이 생겼다. 트럼프 풋은 곧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 널리 통용되는 ‘트럼프는 주식시장이 부진한 걸 절대로 오래 두고 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기도 하다.
트럼프 풋은 지난 2월과 3월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와 멕시코를 상대로 관세를 발표했다가 이내 유예하거나 슬쩍 철회했을 때 여전히 통용되는 개념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앞에선 아무리 단호하게 말하더라도 주식시장이 무너지면,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를 망쳤다’는 비난을 받고 싶어 하지 않으므로 결국, 시장에 무리를 주는 정책을 철회할 거란 분석이었다.
그런데 4월 2일 관세를 발표한 뒤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분명 이전 두 달과 달라 보인다. 트럼프는 “불공정 무역을 시정해 미국인을 착취, 수탈해 가던 나라들에 제값을 청구하고, 미국을 다시 제조업 강국으로 만들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관세는 타협과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수요일 발표 이후 대혼란에 빠진 주식시장은 연일 하락했다.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34%의 관세율을 그대로 적용해 보복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하면서 “관세 전쟁이 임박했다”던 전망은 “전쟁 발발”로 바뀌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시장이 잠깐의 조정기를 거친 뒤 제자리를 찾을 거라고 말하고 있지만, 대공황 시기 극단적인 보호무역을 목표로 설정된 스무트 홀리법의 관세보다도 높은 이번 관세 조치로 소비자 물가가 올라 경제 활동이 둔화하고, 기업들의 투자도 위축될 것이 뻔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계속 나온다.
스캇 베센트 장관 인터뷰
예의 트럼프 풋이 이번에는 없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에는 기어이 “양치기 소년”이 되지 않을 심산이라면,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를 관철해 이루고자 하는 건 무엇일까? 시장이 폭락하고 경기침체가 와 많은 사람이 경제적으로 고통받게 된다면, 그래서 ‘조 바이든보다 나을 게 없네. 아니, 더 최악이네!’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트럼프 행정부가 이렇게 나올 리가 없다.
트럼프 행정부가 그리는 시나리오는 무엇일까? 관세로 인한 이득보다 잃게 되는 게 많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많지만, 그래도 트럼프 행정부의 설명을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속단하는 거 아닐까? 그러던 차에 터커 칼슨이 스캇 베센트 재무장관과 1시간가량 진행한 인터뷰를 보게 됐다. 이 내용을 토대로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를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풀어봤다.
이번 관세는 미국 경제, 미국 노동자, 그리고 공화당의 지지 기반(Republican alignment)에 아주 중요한 변화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미국 노동자와 중산층은 오랫동안 후퇴하고 약화했다. 특히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중국의 공격적인 무역 정책이 미국에 이른바 차이나 쇼크(China shock)를 가져오면서 이들의 경제적 기반은 송두리째 무너졌다.
사실 위기의 징조는 차이나 쇼크 전부터도 있었다. 미국 내에서 분배의 문제(distributional problem)가 점점 심각해진 건데, 특히 양쪽 해안 도시 사람들은 계속해서 잘나가고 잘 사는 사이 중부, 남부에 사는 노동자들의 삶은 점점 팍팍해졌다. 기대수명이 낮아졌고, 자식들에게 밝은 미래를 물려줄 수 없게 된 부모들은 절망에 빠졌는데도, 기득권 엘리트들은 이 문제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문제를 근 40년 만에 정면으로 마주하고 해결하기 위해 소매를 걷어붙인 지도자다.
관세는 미국의 산업과 경제를 부흥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우리는 미국의 고도로 금융 집약적인 경제가 국가 안보에 필요한 의약품, 반도체, 배를 비롯해 수많은 것들을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됐다. 글로벌 공급망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면서 미국의 경제 안보도 약해졌다.
그동안 미국은 금융을 중심으로 세계 경제의 중심에 섰다. 다만 그러는 사이 미국 노동자들의 삶을 지탱해 주던 제조업과 같은 분야가 약해졌는데, 이제는 다시 모든 미국인이 더 높은 수준의 급여를 받으며 잘 살 수 있는 길을 찾을 때다. 다시 말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관세는 그 시작이다.
관세 정책을 발표한 뒤 주식시장이 하락했지만, (인터뷰는 3일에 녹화했고, 4일에 방영) 단기적인 등락에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한다. 워런 버핏은 “단기적으로 보면 시장은 투표 기계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저울과 같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 정책의 방향이 맞다면, 시장도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게 될 거란 뜻이다. 관세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이 현재 주식시장이 부진한 걸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탓으로 돌리려고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요인은 바로 딥시크(DeepSeek)가 가져온 충격파다. 즉, 소위 MAG-7으로 불리는 테크 업계 7대 기업(엔비디아,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아마존, 테슬라) 주식은 지난 18개월 정도 연일 상한가였지만,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중국 AI 기업의 놀라운 성과에 휘청였다. 하지만 오늘 4% 하락한 S&P500 지수도 장기적으로 보면 하락 폭을 눈치채기 어려울 거다. (**이후 S&P500 지수는 하락을 거듭해 관세 발표 전 대비 10% 이상 내렸다.)
테크 기업은 갑자기 시험대에 올랐지만, 지금 더 중요한 건 트럼프 대통령이 준비한 대로 미국 경제의 펀더멘털을 다듬는 일이다. 즉, 경제의 펀더멘털이 좋다면, 세금도 안정적이고, 기업들은 상황을 예측할 수 있으며, 저렴한 에너지를 풍족히 쓸 수 있고, 불필요한 규제는 완화돼 노동자들도 더 좋은 대우를 받게 된다면, 결국 주식시장은 다시 좋아질 것이다.
(다음 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