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디오 포스트 대신 원래 대로 텍스트로 된 포스트로 대본을 같이 올려놓겠습니다. 이런저런 시도를 하면서 가장 뉴스를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 합니다. 많은 피드백 부탁드립니다.
그 전에 일론 머스크의 영향력에 관해 우려하는 글을 제가 여기저기 썼는데, 그 가운데 스브스프리미엄에 쓴 글 한 편을 소개합니다. 또 대외 투자 규제 조항에 대한 내용은 프로스펙트의 보도와 헤더 콕스 리처드슨의 뉴스레터 링크를 같이 올려드립니다.
방해되면 손발 다 잘라버린다?... "트럼프 2기, 이 사람은 무소불위"
The American Prospect: How Musk Outmaneuvered Trump
헤더 콕스 리처드슨의 Letters from an American 12/21일 자 뉴스레터
중국 스타트업 DeepSeek, 제가 중국어는 읽을 줄 모르는데, 한자로는 심도구색이더라고요. 깊이 있게 구하고 찾는다는 뜻을 영어로 옮겨서 DeepSeek이겠죠. 심도구색 공사에서 개발해 내놓은 인공지능 추론 모델 딥씩-V3가 시장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딥씩-V3는 당장 챗GPT나 구글, 메타의 인공지능 모델과 견줄 수 있는 저비용 AI 모델입니다.
오픈소스로 공개된 무료 R1 모델은 오픈AI의 추론 모델 o1에 별로 뒤지지 않는 성능을 발휘하며 순식간에 아이폰 무료 앱 가운데 다운로드 1위에 등극했습니다. 딥씩이 이 모델을 구축하는 데 든 비용은 600만 달러로, 이는 o1이 모델을 학습하고 개발하는 데 든 비용의 3%에 불과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앞서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이 첨단 기술 부문에서 특히 중국에 비해 초격차를 유지해야 한다는 기조를 분명히 하면서 엔비디아의 칩을 비롯해 반도체의 핵심 부품의 수출을 제한했죠. 이 조치로 인해 딥씩은 경쟁사보다 구형의, 성능도 떨어지는 엔비디아 칩으로 구동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러자 AI 칩의 제왕 엔비디아 주가는 하루 만에 최대 17%가 급락했습니다.
미국 주식시장에서도 나스닥은 원래 기술주의 비중이 높죠. 이 가운데서도 주요 기술주를 모아놓은 나스닥 100 지수는 월요일 딥씩의 R1 모델 열풍으로 시가총액이 1조 달러 가까이 증발했습니다. AI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붓는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중국의 크게 알려지지 않던, 소위 ‘듣보’ 경쟁자에게 밀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매도 심리를 부추긴 겁니다.
전문가들은 다만 딥씩이 자원을 창의적으로, 아주 효율적으로 활용해 성과를 낸 점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미국 기업과 곧바로 경쟁 구도를 형성하긴 어려울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최첨단 칩에 대한 접근성은 미국 기업이 여전히 월등히 좋고, 딥씩이 모델을 출시하는 시점까지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게 가능했지만 당장 수요가 급증하면 결국 컴퓨팅 파워에 대한 수요가 높아져 비용이 더 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실제로 어제는 급락했던 미국 테크 기업, 기술주의 주가가 오늘 28일 다시 반등했습니다. 엔비디아도 다시 낙폭의 절반 정도를 회복했고요.
아무튼 딥씩 쇼크로 지난주 트럼프 대통령이 오픈AI와 오라클, 그리고 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를 대동하고 미국이 AI 기술을 주도하기 위해 5천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진행하겠다고 발표한 스타게이트 계획도 자연히 다소 빛이 바랬습니다.
이제는 다소 구문이 됐지만,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이야기를 짧게 해보면, 취임 이튿날인 21일이었죠. 트럼프 대통령이 “엄청난 AI 인프라 투자”라며, 대규모 데이터 센터를 건설하고, 미국이 AI 경쟁에서 확고한 우위를 점할 거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발표와 거의 동시에 일론 머스크가 여기에 대놓고 재를 뿌리고 찬물을 끼얹는 발언을 했습니다.
우선 소프트뱅크를 비롯해 투자 및 운영을 맡은 기업들이 약속한 자금을 확보하지 못했다며, 과연 프로젝트가 계획대로 실행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의구심을 표합니다. 그러자 기술 부문을 맡은 샘 알트만이 머스크의 플랫폼 X를 통해 일종의 화해를 시도하죠. 그러지 말고, 미국에도 좋고, 다 좋은 일이니 같이 협력합시다~ 이런 식으로요. 그러자 머스크가 훨씬 쎄게 나옵니다.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는 껍데기뿐인 가짜이고, 알트만은 사기꾼이라고 맹비난했죠. 이미 오픈AI와 샘 알트만과 개인적, 사업적으로 틀어진 지 오래 된 머스크긴 해도 이렇게 수위가 높을 줄은 몰랐습니다.
자,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머스크가 어디까지 영향력을 행사할지, 머스크가 수장을 맡은 정부효율부(DOGE)는 어떤 권한을 부여받아 행사할 수 있을지를 두고 갖은 예측이 쏟아지고 있는데, 일각에선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서 테슬라나 스페이스X 등 자기 기업이 빠진 데 대해 앙심을 품고 재를 뿌린다는 분석도 있고, 실제로 프로젝트 자체가 트럼프가 거창하게 발표한 것처럼 내실이 있지 않다는 반론도 나옵니다. 소프트뱅크는 5천억 달러 가운데 1천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 돈을 확보하려면 대규모로 부채를 조달하거나 자산을 매각해야 하는 것으로 보이고, 일부 프로젝트는 이미 바이든 행정부 시절부터 추진해오던 것들에 포장만 바꾼 겁니다. 여기에 프로젝트를 세부적으로 어떻게 진행하고 파트너 별로 어디에 돈을 대고 어디까지 기여할지 구체적인 그림도 너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결국, 트럼프가 구체적인 철학 없이 겉만 번드르르한 발표를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이는데요, 진짜 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을지, 아니면 그저 오픈AI를 비롯해 참여 기업에게 거대한 데이터에 마음껏 접근할 수 있는 길을 터주며 규제 철폐의 꿈을 실현해주는 걸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머스크의 발언으로 프로젝트는 신뢰도에 타격을 입었고, 트럼프도 기분이 좋지는 않을 텐데 머스크는 거침이 없습니다. 앞서 잠깐 말씀드렸듯이 원래 공동으로 DOGE를 이끌 예정이던 비벡 라마스와미를 사실상 밀어냈다는 보도도 이미 나왔죠.
지난 대선 결과가 나온 뒤부터 저는 여기저기서 선출되지 않은 권력 가운데 가히 역대 최강의, 제약없는 권한을 누릴 수도 있는 머스크를 경계하는 글을 썼는데요, 오늘은 마지막으로 지난 12월 20일에 있었던 일을 하나만 더 짚어보고 이야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제가 당시 한국에 갔다가 가족여행 중이라 프린스턴에서 온 편지도 쓰지 못하고 아메리카노 방송도 못하던 시기였는데요,
무슨 일이 있었냐면, 미국 정부가 지금 몇 년째 예산안을 의회가 정식으로 통과시켜서 살림살이를 하지 못하고, 몇 개월 단위로 부채 연장 승인을 받아가며 임시로, 미봉책으로 운영하고 있는데요, 지난달 20일,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직전이었습니다. 118기 의회가 사실상 마지막으로 양당이 합의한 내용을 승인하고, 예산안의 세부 사항을 둘러싼 다툼은 하더라도 다음 회기에서 합시다, 일단 연말연시 잘 보내고 1월 3일에 119기 새 회기에 만납시다! 하고 헤어질 예정이었던 별 일 없을 예정이던 평범한 날이 머스크의 트윗 하나로 아주 드라마틱한 날로 완전히 바뀝니다.
머스크는 20일 새벽 일찌감치 트위터, X에 등판합니다. 두 당이 합의한 예산안은 처음부터 글러먹었다고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는데, 민주당이 늘 그렇듯 정부가 나서지 말아야 할 온갖 것에 돈을 대는 예산안을 그냥 승인해준 건 공화당이 큰 잘못을 저지른 거고, 11월 선거에서 보여준 미국인들의 민심도 배반하는 거라는 내용이었습니다.
DOGE의 수장을 맡을 예정이니까 아, 벌써부터 기강을 잡으려 드는 건가? 허리띠를 졸라매겠다는 건 알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아직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기까지 한 달이나 남았는데, 너무 월권 아닌가 싶었습니다. 어쨌든 트럼프 대통령도 뒤늦게 머스크 말이 맞다, 예산안 잘못됐다, 내가 정책 의제를 처리하기 위해선 부채 한도 자체를 없애자는 둥 혼란스러운 얘기를 쏟아냈고,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도 부랴부랴 머스크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법안을 조율합니다. 조율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하달받은 것처럼 보였는데요, 합의한 예산안이 실제로 민주당이 주도해서 짠 건 아니거든요. 두 당이 머리를 맞대고 타협하고 조율한 내용이었죠. 아니나 다를까 민주당은 존슨 의장이 부랴부랴 새로 낸 예산안은 가볍게 거절해버렸고, 원안이 약간의 자구만 바뀌어서 통과됐고, 다행히 미국 정부는 정부 폐쇄, 즉 셧다운을 피했습니다.
처음에는 약간의 자구만 바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애초에 머스크가 전형적인 성동격서 전략을 들고 나온 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드는데, 원래 예산안에는 대외 투자 규제 조항(Outbound Investment Provision)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공화당의 존 코닌, 민주당의 밥 케이시 의원이 같이 발의한 법안으로 미국 기업이 반도체나 AI 등 민감한 기술을 다른 나라에 투자하지 못하게 금지하거나 사전에 신고하고 승인을 받도록 한 규정입니다. 미국 밖으로, outbound 나가는 투자를 규제하는 건데,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법안이죠. 중국과 반도체, AI 기술 격차를 유지하는 데 신경을 쓴 건 민주당과 공화당이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 이런 타협안이 나올 수 있었죠. 그런데 머스크의 이해관계는 좀 달랐습니다. 아니, 많이 달랐습니다.
머스크는 2019년 상하이에 테슬라 기가팩토리를 지었죠. 현재 테슬라 수익의 약 25%가 중국에서 나옵니다. 신차의 거의 절반 가량을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고요. 여기에 두 번째로 짓고자 하는 대규모 데이터 센터와 공장은 자율주행 기술 연구의 메카로 삼고 싶어하는 게 머스크의 계획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대외 투자 규제 조항이 예산안에 명시되면 테슬라의 사업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던 거죠. 그래서 머스크는 격렬히 반대했고, 자기 뜻을 관철시킨 겁니다. 프로스펙트를 비롯한 몇몇 언론이 이 점을 지적하고, 머스크의 사업적 이해관계가 미국의 안보를 위험에 빠트렸다는 기사를 썼지만, 저는 헤더 콕스 리처드슨의 뉴스레터에서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고요, 어쨌든 이 사실은 이내 묻히고 맙니다.
일론 머스크는 트럼프의 당선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긴 했지만, 선출된 사람이 아니고, 심지어 인사 검증을 받지도 않고 대체로 비밀리에 정부효율부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영향력을 거침없이 행사하며 미국을 넘어 영국, 독일 정치에도 간섭하고 있죠. 어쨌든 일론 머스크가 트럼프 행정부에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어디까지나 관철할 수 있을지 계속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최소 3억 달러 가까이 선거에 쏟아부은 돈을 금방 회수할 수 있을 법한 출발을 보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