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스턴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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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 대자연 앞에서

아메리카노 부부의 여행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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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근(아메리카노) and Hye Young You
Dec 2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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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도시 (2): 부에노스 아이레스 2편

내가 사랑한 도시 (2): 부에노스 아이레스 2편

Hye Young You
·
December 2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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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머물며 쓴 여행기는 “내가 사랑한 도시” 편으로 엮어 올렸습니다. 연재가 다소 들쭉날쭉해 보일 수 있지만, 오늘 글은 “아메리카노 부부의 여행기”에 이어 붙이려 합니다. 이번 주에 다녀온 파타고니아에서 마주한 페리토 모레노 빙하와 엘 찰텐 봉우리가 실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는데, 남미 최대 도시 중 하나인 부에노스 아이레스와는 어쩌면 모든 면에서 정반대에 있는 대자연을 만나고 왔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파타고니아 대자연에서 보고 느낀 점을 ‘도시’ 편에 묶기는 어색했습니다.

아메리카노 2025 여름호

아메리카노 2025 여름호

송인근(아메리카노)
·
June 1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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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희 첫 여행기는 팟캐스트로도 전해드렸습니다.

이름과 역사

직역하면 “말비나스는 우리를 하나로 뭉치게 한다”, 의역하면 “말비나스 문제에 관해선 우리는 하나” 정도가 되는 말이다.

사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가장 자주 접하게 되는 광고가 바로 저 말비나스섬에 관한 광고입니다.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영유권을 두고 전쟁까지 벌였던 섬(아르헨티나에서는 말비나스(Malvinas), 영국에서는 포클랜드(Falklands))입니다. 영토 분쟁에 관해서는 저 같은 제삼자가 함부로 의견을 내기 어렵습니다. 특히 비교적 최근에 영토를 둘러싸고 큰 갈등이 있었고, 논란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경우엔 지명을 뭐로 불러야 할지부터 고민됩니다. 말비나스라고 부르면 아르헨티나 편을, 포클랜드라고 부르면 영국 편을 드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요. (실제로 아르헨티나 친구들과 이야기하던 중에 ‘포클랜드’라고 말했다가 제대로 ‘갑분싸’가 됐던 적이 있습니다…) ‘나락 퀴즈쇼’에 답변자로 나서면 이런 기분일까 싶었습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다니는 거의 모든 시내버스에 저 광고가 붙어있다. 아예 직접 “말비나스는 아르헨티나 땅”이라는 말이다. 저 주장과 달리 현재 국제 사회는 대체로 포클랜드(말비나스) 섬을 영국령으로 인정하고 있다.

오늘 여행기에서 말비나스/포클랜드 영토 분쟁의 역사와 논란을 소개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럴 생각도 없고, 균형 있게 다룰 자신도 없습니다. 대신 자연에 이름을 짓고 붙이는 명명(命名)이 때에 따라 고도의 정치적인 행위가 될 수 있음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느꼈다는 말을 새삼 꺼내는 건 파타고니아에서 마주했던 빙하와 새벽부터 힘들게 올랐던 산의 이름 때문입니다.

이번 글에서 짝꿍 유혜영 교수가 소개해 줄 대자연 두 곳의 이름은 페리토 모레노 빙하(Perito Moreno Glaciar), 피츠로이산(Monte Fitz Roy) 또는 찰텐봉(Cerro Chaltén)입니다. 여기에 관계된 인물이 두 명 있는데, 프란시스코 모레노(Francisco Moreno)와 로버트 피츠로이(Robert FitzRoy)입니다. 찰텐은 사람 이름은 아니고, 지금은 쓰이지 않는 안데스 원주민 언어인데, 그 뜻은 잠시 뒤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시다시피 16세기 이후 유럽인들은 전 세계를 탐험하고 ‘발견’, ‘정복’하며 빙하와 산, 호수, 폭포를 비롯한 자연에 자기들한테 익숙한 사람 이름을 붙이곤 했습니다. 탐험에 돈을 대준 왕실이나 귀족 가문의 이름을 붙이기도 했고, 자기 이름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이 경우도 넓게 보면 그 전통을 따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아르헨티나 호수(Lago Argentino)가 시작하는 지점에 있는 빙하에 페리토 모레노라는 이름을 붙인 프란시스코 모레노는 아르헨티나의 탐험가이자 지질학자였습니다. ‘전문가’라는 뜻의 ‘페리토(perito)’를 아예 호(號)처럼 붙였으니, 이 사람은 대단한 업적을 세운 사람인 듯합니다. 실제로 파타고니아 엘 칼라파테나 엘 찰텐에 있는 서점에 가보면 프란시스코 모레노의 생애와 업적을 자세히 기록한 위인전이 진열돼 있었습니다. 적어도 파타고니아에서 만난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모레노를 위인으로 추앙하는 게 분명해 보였습니다.

지질학을 공부한 모레노는 안데스산맥과 지금의 파타고니아 일대를 탐험하며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던 곳의 자연을 ‘발견’하고 특히 칠레와 아르헨티나 사이의 국경을 확정하는 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칠레와 아르헨티나는 5,308km에 이르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파타고니아 일대의 국경이 모레노가 이끈 탐험과 뒤이은 협상을 통해 확정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르헨티나는 모레노의 공을 기리기 위해 아르헨티나 호수 남쪽 끝에 있는 빙하의 이름을 페리토 모레노 빙하로 지었습니다.

19세기 중반 칠레와 아르헨티나를 가르는 안데스산맥 일대를 탐험하던 모레노는 비에드마 호수(Lago Viedma) 북서쪽에서 출발해 닿을 수 있는 산봉우리를 ‘발견’하고 여기에 “피츠로이(Fitz Roy)”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앞서 1831년에 대영제국 군함 비글호(HMS Beagle)를 이끌고 남아메리카 대서양과 태평양 일대를 항해, 측량한 함장 로버트 피츠로이 제독을 기리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입니다. (열대 지방을 탐사하고 싶던 젠틀맨(하급 귀족 아래, 자영농과 중산층 위에 있던 젊은 유산 계급 ) 출신 젊은 대학원생 한 명이 비글호의 항해에 동행합니다. 피츠로이 함장보다 훗날 훨씬 더 유명해진 이 젊은이의 이름은 찰스 다윈입니다.)

사실 ‘발견’이란 단어에 굳이 작은따옴표를 붙인 이유를 다들 짐작하실 겁니다. 산은 인간이 발을 들이기 훨씬 전부터 거기 있었을 테고, 원래 살던 사람들이 산의 존재를 몰랐던 것도 아닐 텐데, 자기가 본 순간을 처음으로 규정하는 건 사실 꽤 오만한 태도이긴 합니다. 과학을 무기로 자연을 정복하고 결과적으로 다른 인종마저 자기보다 아래 두려 한 유럽 제국주의의 태도와 관점이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그에 관해 진지하게 다루는 건 오늘 글의 주제와는 동떨어진 일일 테니,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써보겠습니다. 어쨌든 빙하와 거대한 산봉우리에 이름을 붙인 권력은 두 세기가 지나서도 건재합니다.

자, 그럼 다시 원주민들은 이 산봉우리를 뭐라고 불렀을까요? 파타고니아 원주민들이 모레노가 지은 “피츠로이”라는 이름보다 훨씬 더 전부터 그 산봉우리를 부르던 이름이 바로 엘 찰텐(El Chaltén)입니다. 원주민 말로 “연기 나는 봉우리”라는 뜻으로, 대부분 구름에 덮여 있는 산 정상에 붙인 시적인 이름이라고 할 수 있죠. 엘 찰텐이란 이름은 지금도 “아르헨티나 등산의 성지”로 꼽힌 데서 알 수 있듯이 등반을 시작하는 작은 마을 이름으로 남아있습니다. 다만 미국과 영국을 포함한 유럽에서는 산봉우리 이름으로는 ‘피츠로이’가 더 익숙하죠.

대자연 앞에 서면 인간은 자연히 겸손해집니다. 저희 부부도 고생고생해서 봉우리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산정호수까지 기다시피 간신히 다가가는 내내 인간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생각했습니다. 사실 목숨을 걸고 자연을 탐험하고 등산로를 개척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저 같은 등산 왕초보도 위대한 자연을 눈앞에서 볼 수 있던 것도 맞습니다. 그래도 저는 자연에 마치 정복자를 연상케 하는 사람 이름을 붙인 방식보다는 범접할 수 없는 자연을 신성한 존재로 대우하는 듯한 원주민들의 명명법이 더 마음에 듭니다. 그래서 오늘 글에서는 해당 산과 봉우리를 엘 찰텐 또는 찰텐봉으로 쓸 생각입니다. 아니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 뜰 때 봉우리가 붉게 물드는 현상을 가리켜 부른 ‘불타는 고구마’ 같은 귀여운 별명을 썼습니다.

오늘은 짝꿍 유혜영 교수가 쓴 파타고니아 여행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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