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미국을 알아가는 시간” 아메리카노를 진행하고 있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송인근입니다.
지난 아메리카노 에피소드 뒷부분에 올여름 주목해야 하는 주요 이벤트 가운데 하나로 트럼프가 러닝메이트, 즉 부통령 후보로 누구를 간택할지를 꼽아드렸죠. 트럼프가 추린 ‘쇼트 리스트’에 든 후보만 50명이라는 유혜영 교수님 말에 ‘현웃’이 터지기도 했었습니다.
지난 에피소드를 녹음할 때 기준으로 당시 저희 눈에 유력해 보이는 공화당 부통령 후보 다섯 명을 추려 소개해 드렸습니다. 이어 유혜영 교수님과 저 모두 원픽으로 예상한 후보는 팀 스캇 사우스캐롤라이나 상원의원으로 같아서 각자 한 명 더 꼽아 본 2번 픽은 저는 마르코 루비오, 유 교수님은 엘리제 스테파닉이었고요. 그런데 지난주 올라온 뉴욕타임스 데일리 팟캐스트에서 내놓은 예상을 들어 보니, 저희 예측을 조금 고쳐 업데이트할 필요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글을 씁니다.
트럼프는 다들 아시다시피 세간의 이목을 끄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사람입니다. 7월 11일에 자신을 향한 ‘입막음용 뒷돈’ 재판부가 배심원단의 평결을 토대로 최종 판결을 할 예정인데, 이후 7월 15일부터 시작되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부통령 후보를 요란하게 발표함으로써 자신에게 제기될 부정적인 여론을 덮으려 할 것으로 보입니다.
부통령 후보를 하루라도 빨리 정해서 혼자서 다 커버하기 어려운 넓은 미국 땅을 나눠서 유세 다니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저도 잠깐 그렇게 생각했지만, 트럼프로 빙의해 보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이유도 많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트럼프는 오로지 홀로 빛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큰 사람이니까요.
오늘 글은 뉴욕타임스 데일리 팟캐스트에 출연한 마이클 벤더 기자의 예상을 토대로 다시 추려 본 트럼프의 러닝메이트 후보입니다. 부디 공화당 전당대회 전까지 부통령 후보 하마평 자체를 또 새로 쓰게 되는 일은 없으면 좋겠습니다.
2016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는 정치 신인이었다. 트럼프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지, 준비된 후보인지 애써 부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 전략을 택했다. 자기에겐 정치 이력이 거의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아웃사이더’인 자신이 부패하고 무능한 워싱턴 기득권보다 훨씬 낫다고 주장했다.
정치인이 미국 언론과 인터뷰할 때 따르는 문법과 규범이 있는데, 트럼프가 이를 깡그리 무시하자 주류 언론이 그를 피하거나 비판하기 시작했고, 그러자 트럼프는 언론이 불공정한 잣대로 자신을 차별한다며, “거 봐라, 기득권 자식들은 다 한통속 아니냐! 너희 같은 고까운 엘리트 없이도 나는 미국 사람들의 사랑을 충분히 많이 받는다! 그 지지와 사랑으로 선거를 치르겠다”고 맞섰다. 그 호소가 먹혔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트럼프는 엘리트 중의 엘리트이자 이미 8년간 대통령을 했던 클린턴 집안 출신 상대방 후보 힐러리 클린턴을 꺾었다.
2016년 트럼프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될 가능성을 실제로 얼마로 보고 경선에 뛰어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경선에서 승리한 직후만 해도 트럼프는 부통령 후보를 누구로 정할지 별생각이 없어 보였다. 가끔은 ‘부통령 꼭 있어야 해? 그냥 나 혼자 다 하면 안 돼?’라고 생각하는 거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금수저 물고 태어나 가업이던 부동산 사업을 물려받은 트럼프는 당시 뉴욕 사교계를 주름잡던 플레이보이였다. 두 번의 이혼 끝에 세 번째 결혼 생활을 하던 트럼프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된 상황에서 부통령 후보는 기존의 공식을 따라 고르는 수밖에 없었다. 즉, 공화당의 전통적인 지지 기반 가운데 트럼프를 가장 마뜩잖게 볼 유권자들의 마음을 붙잡는 데 적합한 ‘보완재’가 필요했다.
트럼프에게 없지만, 공화당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는 데 필요한 자질을 갖춘 보완재로 발탁된 인물이 바로 마이크 펜스 인디애나 주지사였다. 주지사 전에 12년간 하원의원을 지낸 ‘정치인’ 펜스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보수적인 복음주의 기독교 신자들이 선호하는 인물이었다.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자들도 트럼프가 문화적인 측면에서 너무 진보적이거나 전향적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펜스를 보며 달래고 접었다. 트럼프-펜스 티켓은 그렇게 클린턴-케인 티켓을 아슬아슬하게 꺾었다.
보완재? 필요 없어. 내가 ‘멱살 캐리’ 쌉가능!
짝꿍 유혜영 교수와 내가 아메리카노 지난 에피소드에서 트럼프가 2024년 공화당 부통령 후보 하마평에 오른 인물 중에 팀 스캇 상원의원을 지명할 거라고 예상한 건 8년 전과 같은 공식이 또 쓰일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가 이기든 이번 대선은 ‘역대급’이란 표현이 정말 아깝지 않을 접전이 예상된다. 한 표 한 표가 간절한 상황에서 트럼프는 자기가 바이든에게서 빼앗아 올 만한 가장 만만한 표가 어디 있을지 따져볼 거다.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 세력 가운데 바이든에게 실망한 대표적인 세력이 흑인과 라티노 유권자다. 특히 이 가운데서도 젊은 남성의 표 이탈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젊은이들 사이에선 그래도 여성보다 남성 사이에서 더 인기가 많은 트럼프지만, 어쨌든 트럼프도 나이 든 백인 남성인 건 사실이다. 바이든보다 어려서 그렇지, 트럼프도 지난 14일 생일이 지나서 78세다. 이 약점을 보완해 줄 카드가 흑인이고 트럼프보다 19살 젊은 팀 스캇 의원이(라고 우리는 생각했)다.
그런데 뉴욕타임스 데일리에 나온 마이클 벤더 기자는 8년 사이 많은 게 바뀌었다고 지적한다.
우선 공당(公黨)이던 공화당이 트럼프의 열렬한 팬클럽이 돼버렸다. 지금의 공화당은 다양한 보수적인 가치를 떠받드는 시민들의 모임이라기보다 트럼프의 말 한마디, 손짓 하나에 일사불란하게 트럼프의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행동에 나설 이른바 정치적 고관여층의 입김이 절대적으로 작용하는 사적인 정치 조직에 가까워졌다. 트럼프를 향한 충성도에 비례해 당의 요직이 분배되고, 트럼프의 눈 밖에 나면 아무리 이름 있는 의원이라도 경선에서 살아남기 힘들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는 자신의 약점을 보완해 줄 사람을 굳이 찾느니, 자기 방식대로, 자신의 카리스마를 앞세워 대선을 치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는 곧 트럼프의 약점을 고려해 ‘보완재’ 러닝메이트가 누가 될지 짐작하는 게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트럼프가 공화당을 장악한 것, 트럼프의 열성적인 지지자들을 누구도 거스르지 못하게 된 것 말고 또 뭐가 바뀌었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파국으로 치달은 마이크 펜스와 트럼프의 관계를 되짚어 봐야 한다. 2021년 1월 6일. 선거 결과를 부정하며 의사당을 짓밟은 테러리스트 중 일부는 교수대 모형을 준비해 갔다. 이들은 트럼프의 승리를 찬탈해 가려는 범죄자를 붙잡아 교수형에 처해야 한다는 살벌한 구호를 외쳤는데, 이들이 지목한 “벌받아 마땅한 자”는 선거 결과를 비준하는 하원의장과 상원의장이었다.
하원의장은 낸시 펠로시 민주당 의원으로 트럼프와 앙숙이고, 공화당 지지자들은 다 싫어하는 사람이라 그렇다 치자. 상원의장은? 상원의장은 행정부의 2인자인 부통령이 겸직한다. 평소에 투표권은 없지만, 50:50으로 표가 나뉠 경우 궁극의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다. 그런데 2021년 1월 당시 부통령이 바로 마이크 펜스였다. 트럼프의 부통령인 마이크 펜스에 대해 폭도들은 좀 더 관대했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트럼프를 충분히 지지하지 않는 배신자라며 펜스도 처단하라는 구호가 나왔고, 군중심리 때문인지 몰라도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이를 외치기도 했다. (트럼프는 공개 석상에선 여기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사석에선 그 구호대로 했으면 싶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펜스는 트럼프를 배신했다기보다 미국 헌법이 정한 아주 근본 중의 근본 절차를 지켰을 뿐이다. 선거 결과를 비준하고, 권력의 평화로운 이양을 보장한 거다. 펜스가 트럼프의 바람대로 어깃장을 놓았다면 정말 지금 미국은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물론 다시 돌아가도 마이크 펜스는 담이 작은 편이라서 그런 어마어마한 죄를 저질렀을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펜스와의 ‘악연’ 탓에 트럼프는 부통령을 뽑을 때 충성심이란 가치를 최우선으로 놓게 됐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절대로 트럼프 편을 배신하지 않을 “충견”을 엄선하고 있다. 펜스는 말할 것도 없고, 경선 과정에서 트럼프와 계속해서 대립한 니키 헤일리 전 UN 대사 등 뜨뜻미지근한 지지를 보인 사람들은 애초에 후보에서 제외됐다는 후문이다.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나에게! 나보다 빛나는 후보는 절대 안 돼!
굳이 보완재를 찾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합주 출신이거나 트럼프에게 불리해 보이는 이슈에서 트럼프의 약점을 만회해 줄 만한 후보에게도 별 눈길을 주지 않는다. 특히 대법원이 여성의 임신 중절권을 헌법으로 보장하지 않는다고 판결한 뒤 분노한 여성 유권자들이 보수 대법관을 임명한 트럼프와 공화당을 표로 심판하리라는 전망은 충분히 타당하다. 그렇다고 트럼프가 여성을 부통령 후보로 뽑아서 여성 유권자의 마음을 얻어보려 할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내가 못 하는 걸 만회하는 것보다 내가 잘하는 걸 극대화하는 ‘닥공’이 트럼프의 성미에도 맞다.
트럼프가 철저히 홀로 빛나고 싶어 한다는 점을 한 번 더 언급해야 한다.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독식하고 싶어 하지, 2인자나 3인자가 트럼프에게 쏠리는 이목을 나눠 받는 걸 트럼프는 좋아하지 않는다. 표정이 그래 보여서 나 혼자 ‘궁예질’을 하는 걸까 생각했는데, 기사에서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들을 보면 정말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젊고 유능한 사람, 즉 자기랑 대비되는 사람, 자연히 트럼프 이후 공화당을 이끌 만한 인재로 보일 만한 사람은 탈락이다. 감히 트럼프라는 태양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인물은 안 된다. 트럼프보다 못 나야 하고, 최소한 못 나 보이거나 잘 나게 보이지 않으려고 애를 써야 한다.
이런 기준을 토대로 마이클 벤더 기자가 다시 추린 러닝메이트 후보 세 명은 J.D. 밴스 오하이오 상원의원, 마르코 루비오 플로리다 상원의원, 더그 버검 노스다코타 주지사다. 세 명에 관해 여기저기서 자세히 이야기했으니, 여기서는 간단히 지난번에 우리가 보지 못한 (트럼프 눈에 비칠) 매력 포인트를 짚어보겠다.
J. D. 밴스를 제외한 데는 오하이오주라는 요인이 컸다. 경합주 출신을 뽑으면 그래도 표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거다. 그러나 앞서 설명했듯 트럼프는 어차피 자기 인기로 모든 걸 다 만회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출신 지역이나 배경은 중요하지 않다. 충성도는? 2016년 책 “힐빌리의 노래”를 썼을 때만 해도 밴스는 트럼프에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공화당이 트럼프의 사당으로 바뀌면서, 상원 선거를 준비하면서 트럼프 앞에 납작 엎드리는 것이 출세의 지름길임을 절감하고 그 태스크를 완벽히 수행 중이다. 트럼프의 강성 지지층은 물론이고, 전통적인 공화당 유권자들도 좋아할 만한 배경(해병대 참전 용사, 금융계 VC 경력 등)을 지닌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마르코 루비오는 프린스턴에서 온 편지 지난 편에서 다뤘듯 주소지 이전이라는 뜬금없는 난관이 있긴 하지만, 역시 무난한 후보다. 아직 30대 후반인 밴스가 너무 젊어서 문제라면, 루비오는 50대 초반으로 트럼프와 세대 차이는 덜 드러난다. 루비오도 2016년 공화당 경선 때 트럼프와 각을 세우고 싸웠지만, 대통령 트럼프와는 사이가 좋은 편이었다. 트럼프의 눈 밖에 나면 정치 인생이 꼬일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수많은 공화당 정치인처럼 루비오도 트럼프를 향한 지지와 충성을 여러 차례 보였다.
더그 버검은 여러모로 다크호스다. 나는 여전히 버검이 부통령 후보가 되는 장면을 상상하지 못하고 있지만, 짝꿍 유혜영 교수는 팀 스콧이 제외된다면, 그리고 마이클 벤더 기자의 말처럼 여성도, 젊은 사람도 트럼프가 싫다고 한다면 버검이 뽑힐 수도 있겠다고 진지한 예측을 했다. 버검의 강점은 우선 67세로 트럼프와 같은 세대라는 거다. 감히(?) 트럼프 이후를 이끌 만한 재목으로 보기 어렵다.
노스다코타 사람들한텐 미안한 말이지만, 정말 ‘듣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은 주 출신이라 지명도가 정말 낮은데, 그게 트럼프한테는 오히려 마음에 드는 구석일 수 있다.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길 염려를 안 해도 되니까… 또 밴스도, 루비오도, 아니 웬만한 공화당 정치인은 누구나 다 예전에 트럼프를 욕했던 전력(?)이 있다. 그런데 버검은 워낙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사람이라서 그런 기록이 잘 없다. 실제로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모르지만, 똑같이 충성 경쟁을 하는 사람들을 놓고 평가할 때 전에 트럼프와 대립했던 이력은 치명적일 수 있다. 특히 트럼프처럼 뒤끝이 없지 않은 사람한텐 말이다.
여기에 벤더 기자는 트럼프가 카메라가 켜져 있을 땐 자기가 모든 말을 다 하고 관심을 독차지하고 싶어 하지만, 카메라가 꺼졌을 때 뒤에서는 또 자기랑 어느 정도 말이 통하는 사람을 원할 거라고 내다봤다. 그래서 나이 차이, 세대 차이가 너무 나는 사람은 트럼프가 부담스러워하거나 답답해서 안 뽑을 수 있다는 거다.
아메리카노를 진행하고 프린스턴에서 온 편지까지 쓰면서 매일 같이 트럼프라는 인물을 접하고 탐구하고 사는데도 여전히 트럼프라는 인물은 오롯이 파악하기 어렵다. 그래서 예측이 빗나갔는지도 모르고, 아니면 마이클 벤더 기자의 취재가 놓친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더 많은 후보를 망라한 하마평 기사를 보면 여전히 팀 스콧을 비롯해 우리가 짚었던 인물들이 있다. 어쨌든 누가 부통령 후보가 되든 트럼프는 자신의 솔로 플레이 위주로 선거를 치를 것이다. 지금 트럼프의 인기를 생각하면 그게 가장 효과적인 전략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