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미국을 알아가는 시간” 아메리카노를 진행하고 있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송인근입니다.
오늘은 미국을 떠나기 직전 녹화했던 미국 대학가 반전 시위와 대선 여론조사에 관해 이야기한 아메리카노 최근 에피소드의 말미에 짧게 언급했던 수정헌법 12조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한국에 와서 가족, 친구 만나느라 바빠서 우려한 대로(?) 편지를 못 쓰고 있지만,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는 쓸 거리들을 언젠가는 늦지 않게 꼭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상 최초’ 타이틀 수집가라 해도 과언이 아닌 트럼프가 또 새로운 타이틀을 얻었다. 이미 재임 중에 두 차례 탄핵당한 최초 대통령 — 상원에서 재적 의원 2/3의 동의를 얻지 못해 무효가 돼 실제로 대통령직에서 내려오지는 않았다 —, 최초로 형사 기소된 전직 대통령이란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는 트럼프는 이번에는 형사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번에도 물론 전직 대통령으로는 사상 최초다.
정확히는 “유죄를 선고받게 생겼다”고 하는 게 맞다. 미국은 수정헌법 6조에 명시된 원칙에 따라 피고의 죄의 유무를 배심원단이 협의해 결정한다. 배심원단의 결정을 뜻하는 평결(verdict)이 나오면 판사는 보통 그 평결에 따라 최종 판결을 내린다. 특히 배심원단이 만장일치로 피고가 유죄라고 한 경우 판사가 이를 뒤집으려면 빈틈없이 치밀한 논리와 누가 봐도 수긍할 수 있는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일은 거의 없다.
지난달 말 ‘입막음용 뒷돈 지급 사건’에서 피고 트럼프는 유죄라고 한 것도 배심원단 12명 전원이 뜻을 모은 평결이었다. 판사가 형량을 선고하는 날은 오는 7월 11일로 잡혔는데, 평결이 뒤집힐 가능성은 거의 없으므로, “형법을 어긴 중범죄자(felon)가 된 최초의 전직 대통령” 타이틀을 미리 붙여도 크게 무리는 없겠다.
다만 징역형이 선고되더라도 트럼프가 실제로 투옥될 가능성은 작다. 집행유예가 선고될 가능성이 큰데, 트럼프는 지난 10일 자신의 변호사와 함께 선고 전에 형량과 집행유예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밟는 절차인 집행유예 사무관(probation officer)과의 온라인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난 에피소드에서도 언급했고, 스브스프리미엄에도 썼듯 트럼프가 각종 관행과 금기를 깨는 건 그 자체로는 별 뉴스가 되지 않는다. 원래 평생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는 격언처럼 트럼프는 파도 파도 괴담만 나오는, 원래 질이 나쁜 사람이다 보니 사람들이 트럼프가 저지른 잘못에는 대체로 둔감하다. 오히려 범죄 혐의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복잡하며, 과연 이게 감옥에 보낼 만한 일인가 싶을 만큼 약해서 문제다. 민주당과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지지자는 물론이고 중도층 유권자들로부터도 괜히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아니, 트럼프 같은 굴지의 재력가가 사업하다가 13만 달러 정도 푼돈이야 장부에 좀 잘못 기재할 수도 있지, 그걸로 트집을 잡아서 감옥에 집어넣어? 아니면 부인 몰래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맺은 것 때문에 그런 건가? 그런 거라면 민주당 정치인들은 뭐 깨끗하나? 빌 클린턴은 어땠는데? 이거야말로 순전히 정치적인 마녀사냥이지!’
이렇게 생각하기 딱 좋다. 대부분 여론조사도 그렇게 나온다. 이번 사건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사람은 네 명 중 한 명꼴로 많지 않다. 그리고 그런 사람 대부분은 어차피 평생 민주당 찍어 온, 이번에도 민주당 찍을 사람들이다. 트럼프는 전통적인 미디어 말고 소셜미디어나 유튜브의 대안 언론, 군소 매체에서 정보를 얻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모든 매체가 다 그렇진 않지만, 트럼프와 바이든에 관한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매체 대부분이 여기 속한다.
헌터 바이든도 ‘유죄’
게다가 바이든 대통령의 사고뭉치 아들 (이 정도면 아주 점잖게 표현한 거다) 헌터 바이든이 2018년 총기를 사면서 마약에 중독돼 있거나 불법 마약을 소지, 복용하고 있는지에 관해 거짓말을 한 혐의로 마찬가지로 유죄 평결을 받으면서 국면은 완전한 피장파장이 됐다.
물론 후보 본인이 범죄자가 된 것과 후보의 아들이 범죄자가 된 건 다르고, 죄의 양상도, 질도 다르지만, 트럼프가 어디 그런 걸 따져 볼 틈을 줄 위인인가? 트럼프는 곧바로 “나를 마녀사냥으로 몰아세우더니 집안 단속조차 똑바로 못하는 한심한 바이든”이라는 공세를 폈고, 선거자금도 계속 잘 모아서 바이든을 맹추격하고 있다. (선거자금 모금에선 바이든이 트럼프를 크게 앞서고 있었으며, 여전히 총액에선 앞서 있다.) 바이든으로서는 여러모로 트럼프에게 범죄자 프레임을 씌우기가 어려워졌다.
그래도 바이든과 트럼프가 명확히 대조되는 지점은 있다. 바로 법원과 사법 제도를 대하는 태도다. 트럼프는 두 차례 탄핵당했을 때도, 퇴임 후 자신을 둘러싼 여러 혐의가 제기된 시점부터 줄곧 지금 미국 법원은 바이든과 민주당을 비롯한 기득권 세력, 딥스테이트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며 자신을 부당하게 마녀사냥하는 존재라고 욕했다. 법을 어긴 혐의로 기소된 뒤로는 담당 판사 후안 머션과 배심원단을 계속해서 공격하고 위협해 함구령(gag order)을 10번이나 받았다. 그는 한 번만 더 함구령을 받게 되면 재판 일정과 상관없이 며칠을 구치소에서 보내야 한다는 경고를 받고 나서야 진짜 마지못해 법원을 향한 비방을 멈췄다. 그러고는 뒤로 계속해서 함구령을 풀어달라고 집요하게 로비를 벌였다. 정말 징글징글할 만큼 끈질기다.
바이든이 하나 남은 아들 헌터 바이든에게 유죄를 선고한 미국 법원, 사법 제도를 향해 보인 반응은 트럼프의 반응과 사뭇 달랐다. 바이든 대통령은 배심원단의 평결이 나온 직후 성명을 냈는데, 핵심은 다음 두 가지다. “나는 아들을 변함없이 사랑하고 지지한다.” “(그러나) 나는 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 앞서 기자들이 헌터 바이든이 실형을 선고받을 경우 아들을 사면할 것인지 묻자, 바이든은 망설임 없이 “No.”라고 답했다. 이미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세상이라 사람들이 얼마나 차분하게 둘의 차이를 따져 비교할지 모르지만, 바이든이 이달 말 TV 토론에서 “나는 미국의 사법 제도를 존중하는 사람이고, 트럼프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건 맞는 말이다.
수정헌법 12조: 대통령과 부통령의 주소지
수정헌법 12조 얘기를 하기로 해놓고 그사이에 늘 그렇듯 업데이트할 게 너무 많아서 다른 데로 이야기가 샜다. 어쨌든 이 모든 재판 뉴스의 총합은 결국 제자리라는 허탈한 정리와 함께 원래 오늘 하려던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아메리카노 지난 에피소드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부통령 후보로 누구를 지명할 것이냐를 이야기하며 찾아서 설명을 달겠다고 약속한 내용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는 현재 부통령인 카말라 해리스다. 해리스 부통령이 존재감이 없다, 잘하고 있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기사들이 미국에서도 간혹 나온다. 당장 나부터도 민주당의 차세대 지도자를 꼽을 때 과연 카말라 해리스를 선뜻 첫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그러나 또 반대로 생각해 보면, 원래 부통령이란 자리가 대통령이 자리를 비울 때를 대비해 만들어놓은 ‘예비’의 성격이 강해서 뭔가 자기만의 의제를 가지고 돋보이기 어려운 자리다. 아니, 돋보이려고 하는 게 때론 이상한 자리이기도 하다.
대통령과 부통령의 관계도 법이나 관습에 따라 정해졌다기보다 ‘케바케’다. 자기만의 분야를 찾아 대통령과 공동 통치에 가까운 권한을 행사하는 부통령이 없는 건 아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하의 딕 체니 부통령이 국방, 외교에서 그랬다. 그러나 대부분 부통령은 원래 별다른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하에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주도해서 편 정책을 단 하나라도 기억하는 분 계신가? 나부터 없다. 펜스는 2020년 선거에서 바이든이 이겼다는 사실을 상식에 따라 확인했다가 트럼프 지지자들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은 게 가장 큰 치적일 만큼 한 게 없다. 할 게 없었다. 원래 부통령이 어쩌면 그런 자리일지 모른다.
아무튼 그래서 해리스가 인기 있는 부통령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 결격 사유가 있는 것도 아니므로, 이번 선거에도 당연히 바이든의 러닝메이트로 나올 것이다. 그럼 트럼프의 러닝메이트는 누가 될 것인가? 모두가 궁금할 거다. 트럼프는 원래 상대방이 궁금해하는 걸, 궁금해 미치겠다 싶을 때까지 알려주지 않는다. 역시 관심을 자기한테 집중시키는 데 천부적인 자질이 있다. 7월 15~18일로 예정된 공화당 전당대회 전까지 최대한 뜸을 들이다가 발표할 가능성이 크다.
간략히 추려 본 후보군 5명은 다음과 같다. 팀 스캇(Tim Scott) 사우스캐롤라이나 상원의원, 더그 버검(Doug Burgum) 노스다코타 주지사, JD 밴스(J.D. Vance) 오하이오 상원의원, 마르코 루비오(Marco Rubio) 플로리다 상원의원, 엘리제 스테파닉(Elise Stefanik) 뉴욕 하원의원. 이 가운데 유혜영 교수와 나 모두 팀 스콧을 지명할 것 같다고 예측했는데, 둘이 예측이 겹쳐서 두 번째 픽은 누가 될 것이냐까지 맞춰봤다. 유혜영 교수는 엘리제 스테파닉을, 나는 마르코 루비오를 뽑았다. 모든 후보가 장단점이 있는데, 마르코 루비오의 걸림돌은 좀 특이하다. 바로 선거인단이 같은 주 출신 대통령과 부통령에게 표를 던질 수 없다는 수정헌법 12조 규정이다.
수정헌법은 대통령과 부통령의 선출 방식을 상술한 법인데, 정확한 조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The Electors shall meet in their respective states and vote by ballot for President and Vice-President, one of whom, at least, shall not be an inhabitant of the same state with themselves;
선거인은 각자의 주에 모여 대통령 및 부통령을 투표로 선출하며, 그중 적어도 한 명은 자신과 같은 주의 주민이 아니어야 합니다;
좀 더 풀어서 해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러닝메이트로 팀을 이뤄 출마한다고 해도 엄연히 대통령과 부통령에게 표를 따로 던지게 돼 있다. 그런데 내가 플로리다주에 사는 유권자로, 선거인단이 됐는데,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와 러닝메이트인 부통령 후보가 모두 플로리다주 주민이라면? 둘 중 한 명에게는 투표하지 못한다. 수정헌법 12조 조항이 그렇다. 19세기 초에 법을 비준할 때만 해도 같은 주 출신이 대통령, 부통령으로 팀을 이뤄 나오면 출신 주에만 특혜를 몰아주고 ‘파벌’이 등장할지 모른다는 우려에서 생긴 규정일 것이다.
부통령 후보가 누가 되든 트럼프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 공화당으로서는 당연히 결사옹위 대상인 트럼프를 살리고 다른 카드는 버리는 게 맞다. 그럼 플로리다주에 배정된 선거인단 30명은 대통령은 트럼프를, 부통령은 루비오가 아닌 다른 후보를 찍을 거다. 해리스를 찍지는 않을 테니, 무효표가 나거나 다른 군소 후보를 찍는다고 치자. 그럼 트럼프가 대통령에 가까스로 당선되고, 루비오는 플로리다주의 선거인단 표 30표를 얻지 못해 과반 득표에 실패하는 시나리오가 발생할 수 있다. 수정헌법 12조는 과반을 득표한 후보가 없으면 부통령은 상원에서 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마찬가지 경우 대통령은 하원에서 결정한다. 다만 하원의원 435명이 1인 1표가 아니라 50개 주가 각각 1표를 행사한다. 지금 상황에선 공화당이 다수당인 주가 많아 공화당에 유리하다.) 상원은 주의 인구나 크기에 상관없이 의석이 동등하므로, 곧바로 투표를 한다. 민주당이 지금처럼 상원 다수당인 경우 그럼 상원은 카말라 해리스를 부통령으로 뽑을 것이다.
물론 몇 번의 가정을 거쳐야 하는 일이긴 하지만,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다. 이런 난처한 상황을 예방하는 방법이 있다. 루비오가 주소지를 옮기는 거다. 실제로 2000년 공화당은 비슷한 상황에 처했었다. 텍사스 주지사 출신으로 대선에 도전하던 조지 W. 부시는 딕 체니를 러닝메이트로 지명했는데, 체니도 당시 텍사스에 있는 할리버튼이라는 에너지 회사 CEO로 텍사스에 주소지를 옮겨둔 상태였다. 체니는 부통령 후보가 되자마자 재빨리 주소지를 그 전에 살며 하원의원으로 선출된 적도 있던 와이오밍으로 옮겼다. 텍사스도, 플로리다도 인구가 많아서 배정된 선거인단이 많기 때문에 당연히 포기할 수 없는 주다.
그럼 루비오도 체니처럼 주소지를 쉽게 옮길 수 있을까? 몇 가지 난관이 있다. 우선 체니는 원래 와이오밍에 오래 살았으므로, 주소지를 옮기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루비오는? 어렸을 때 라스베거스(네바다주)에 잠깐 산 적이 있을 뿐 학교도 플로리다에서 나왔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곳도, 정치 경력을 시작해 쭉 살아온 곳도 다 플로리다다. 그러니까 어디 갈 만한 데가 없다. 게다가 루비오는 지난 2022년 중간선거에서 상원 3선에 성공했다. 아직 4년 남은 상원 임기를 주소지를 옮기면 자동으로 포기해야 한다. 상원의원은 반드시 그 주에 살아야 한다. 그렇다고 루비오가 트럼프한테 조심스레 주소지를 옮겨줄 수 있을지 물어볼 수 있을까? 과연? 그럼 트럼프가 “어디 건방지게, 내가 너 아니면 러닝메이트 할 사람 없는 줄 알아?” 하면서 후보 명단에서 당장 루비오를 지우고 말 거다. 그도 그럴 것이 트럼프가 마라라고 저택이 있는 플로리다를 떠나 다시 돌아갈 만한 곳은 뉴욕인데, 지금 자신을 마녀사냥하는 가장 대표적인 곳이 뉴욕 아닌가. 형사 기소 외에 트럼프의 탈세 혐의 등을 묶어 민사 재판을 통해 트럼프에게 막대한 벌금을 물리고 3년간 기업활동을 못 한다고 명시한 주가 뉴욕이다. 트럼프에게 뉴욕은 복수의 대상이지, 다시 돌아가서 정붙이고 살 곳이 아니다.
지금 트럼프의 러닝메이트 자리는 공화당의 야망 있는 젊은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탐낼 만하다. 바이든보다는 젊다지만, 트럼프도 77세다. 트럼프니까 또 어떤 꼼수를 부릴지 모르지만, 적어도 임기는 헌법이 정한 대로 4년만 더 하면 내려올 거라고 가정하면, 트럼프가 퇴임하면 자연히 부통령이 공화당의 차세대 리더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루비오는 상원 4년 임기를 포기하고 도박을 걸어볼 것인가? 잠이 오지 않을 만큼,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생각에 잠길 만큼 고민이 클 거다.
그러나 트럼프 속을 누가 알랴? 누구를 지명할지는 정말 “까봐야 안다.” 게다가 각종 재판 변호사 비용에 민사 재판에서 선고된 벌금까지 물어야 하는 트럼프가 ‘돈이 쪼들리는’ 상황이라 확실한 돈줄을 쥐고 있는 후보나 큰손 후원자들이 좋아하는 후보를 막판에 고려해서 발탁할 가능성도 여전히 있다. 그래서 이래저래 트럼프의 돈줄에 기여한 사람들이 쥐고 있는 ‘발언권’을 가늠해 보는 일은 이번 선거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 프로젝트는 따로 추진하고 있는데, 늦지 않게 공개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