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미국을 알아가는 시간” 아메리카노를 진행하고 있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송인근입니다.
어제 노벨 경제학상 발표를 마지막으로 2024년 노벨상 수상자 발표가 끝났습니다. 한강 작가가 많은 사람의 예상을 뒤엎고 깜짝 문학상을 받으면서 온 국민의 관심이 커졌는데, 경제학상은 반대로 누구나 예상했던,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싱거운(?) 인물에게 돌아갔습니다.
오늘은 다론 아체몰루 교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같이 M.I.T.에 재직하며 최근에 나온 책 “권력과 진보”를 함께 쓴 사이먼 존슨 교수, 아체몰루 교수의 초기 역작으로 꼽히는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함께 쓴 제임스 로빈슨 교수에 대해서도 같이 알아보겠습니다.
스웨덴 한림원은 세 명에게 공동으로 경제학상을 수여하며, “제도가 어떻게 형성되고, 번영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탁월한 연구”를 이유로 꼽았습니다.
아메리카노(AmericaKnow)의 모토는 “미국을 알아가는 시간”이다. 그중에도 미국 정치와 선거, 대통령, 의회, 법원 등 정치 제도 전반을 가장 많이 다룬다. 선거가 한창인 올해 ‘아메리카노 2024’에서는 아무래도 선거 관련 뉴스를 주로 다루지만, 짝꿍 유혜영 교수의 전문성에 기대 사회과학 논문도 많이 소개한다.
정치학뿐 아니라 경제학 논문이나 책도 여러 번 소개하고 다뤘는데, 아체몰루 교수의 연구도 단골 메뉴였다. 연구뿐 아니라 아체몰루 교수의 가공할 만한 논문 생산력에 혀를 내두르며, 짝꿍이 “일주일에 두세 편씩 논문을 쓰시는 분”이라는 식으로 잔뜩 과장 섞인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커리큘럼 비테의 ‘스압’만 느껴봐도 엄청난 연구자라는 걸 알 수 있다.
제도의 중요성
아체몰루 교수의 방대한 연구를 짧게 요약하는 건 실로 외람된 일로 느껴진다. 그래도 감히 거장의 연구를 응축해 보자면, “제도(institution)”라는 단어가 남는다.
아체몰루 교수는 로빈슨 교수와 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경제 발전과 번영을 결정짓는 핵심 요인으로 제도를 꼽았다. 즉, 경제 성장이 단순히 자원이나 지리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시각을 거부하고, 중요한 건 정치 제도와 경제 제도의 상호작용이라고 주장했다.
제도를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면, 더 많은 사람이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경제적인 이윤을 더 많은 사람이 공평하게 나눠 갖는 포용적인 제도(inclusive institutions)를 유지하고 가꾸는 나라는 번영에 이르렀고, 반대로 의사결정 주체도 소수의 엘리트 권력에 국한되고, 이들이 경제적인 이윤과 사회 전반의 부를 독점하는 착취적인 제도(extractive institutions)에 잠식되는 나라는 실패한다. (책에는 아예 남북한을 직접 비교한 장이 있어 국내에서 더 주목하기도 했다. 어제 수상 발효 직후 M.I.T.가 마련한 수상 소감 기자회견에서도 연합뉴스의 송상호 기자가 이에 관한 질문을 하기도 했다.)
현실에서는 더 많은 사람이 의사 결정에 참여하고, 사회적 부를 나눠 갖는 정치 제도가 민주주의다. 반대로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되는 제도를 권위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두 제도는 칼로 두부 자르듯 나뉘는 게 아니라, 한 국가 안에서도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한쪽 특성이 두드러지기도 한다.
아체몰루 교수와 존슨 교수는 어제 인터뷰에서도 미국 정치에서 권위주의의 등장과 득세를 경계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권위주의는 민주적인 의사 결정을 가로막고, 부의 공평한 분배도 이뤄지지 않아 역설적으로 권위주의 지도자를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선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유권자들(주로 경제적으로 하위 계층으로 밀려난 사람들)에게 장기적으로 득이 될 게 없기 때문이다.
경제적 불평등과 인공지능
경제적 불평등에 관해서도 수상자들은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앞선 연구에서도 물론 이 주제를 들여다봤지만, 특히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하고 그로 인해 권위주의 정치인과 정치 체제가 곳곳에서 발호하는 상황에서 인공지능 기술은 순식간에 우리 삶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이런 중차대한 상황에 제도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통찰을 제공하는 책이 가장 최근 저서인 “권력과 진보 - 기술과 번영을 둘러싼 천년의 쟁투”다.
고백하자면, 이 책은 너무 두꺼워서 사실 다 읽지 못했다. (어제 수상 소식을 듣고 다시 자기 전에 읽는 머리맡 도서로 승격했다. 조너선 하이트의 “나쁜 교육”은 잠시 보류;; 읽고 싶은 책이 많을 때는 나보다 책을 예닐곱 배는 빨리 읽는 짝꿍의 능력이 정말 탐난다!) 그렇지만 책 앞뒤를 가득 채운 명사들의 찬사만 훑어봐도 기술과 경제적 불평등, 제도의 역할에 관해 이 책이 어떤 통찰을 던지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 경제의 역사는 기술 진보가 자동적으로 더 폭넓은 번영을 가져다주지는 않음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인공지능 같은 기술의 진보는 소수의 부유한 특권층만 이득을 보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미국의 도금 시대에 산업에서 벌어진 혁신이 진보적인 정치로 제어되어야 했듯이, ‘코드 시대’인 오늘날에도 인공지능 기술을 통한 감시의 새로운 타놉티콘이 도래하는 것을 막으려면 노조, 시민사회, 반독점 활동가뿐 아니라 입법과 규제도 필요하다. …
- 니얼 퍼거슨, 스탠퍼드대학 후버 연구소 시니어 펠로우, “광장과 타워” 저자
테크놀로지가 일자리를 자동화하고 불평등을 악화하고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 가짜 정보와 감시의 도구를 만들어 내면서 우리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하지만 아세모글루와 존슨은 꼭 이래야만 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테크놀로지의 방향은 바람의 방향처럼 이간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자연의 요인이 아니다. 그것이 어느 방향을 향하게 할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인간적이고 희망적인 이 책은 어떻게 공공의 이익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테크놀로지의 경로를 잡을 수 있을지 보여준다. 디지털 시대에 민주주의 운명을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 마이클 J.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저자
미국은 (그리고 세계는) 교차로에 서 있다. 1970년대 이래로 자동화와 오프쇼어링이 게임의 판을 바꾸고 있는 시기에 거대 기업과 갑부들도 미국 정치경제의 규칙을 새로 쓰면서 이전 어느 때보다도 추악한 불공정의 모습을 보이게 만들었다. MIT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대런 아세모글루와 사이먼 존슨은 … ‘진보는 절대로 자동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테크 업계의 억만장자들에게 푹 홀려 있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고 경고한다.
- 커트 앤더슨, “악한 천재들” 저자
기술의 진보가 세상을 알아서 번영으로 이끌어준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앞으로도 더 포용적인 제도를 택하고 착취적인 제도를 배제하기 위해 싸워나가야 한다.
영어 원서에는 큰 챕터와 챕터 사이에, 한국어 번역판에는 본문 앞에 자료 사진이나 삽화 34점과 그에 대한 설명을 쭉 써놓은 부분이 있다. 우연의 일치일까? 마지막 사진에선 일론 머스크가 “로봇이 모든 일을 우리보다 잘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오늘날 기술 결정론을 가장 앞장서서 부르짖는 인물이자, 가장 성공한 테크 업계의 갑부가 다름 아닌 일론 머스크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의미심장한 배치다.
부자들, 특히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업계의 부자들은 트럼프와 해리스 중에 누구를 지지하느냐에 관계없이 정부의 규제를 귀찮아 한다. 심지어 규제는 나쁜 것이라고 악마화하는 이도 많다. 이를 미국인의 프런티어 정신으로 포장하든,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전쟁으로 포장하든, 정부의 부패와 무능을 부각하든 이들은 어떻게든 규제 없는 상황을 만들어 미국 사회, 나아가 전 세계 정치·경제 제도를 착취적인 제도에 가깝게 만들고자 한다는 점에선 이해관계가 통한다.
정치와 경제의 상호 관계를 치열하게 관찰하고 분석한 이 책은 그래서 21세기 도금시대와 더 많은 사람이 번영을 공유하는 시대 사이의 갈림길에 선 우리에게 필독서다.
++ 아체몰루 교수는 터키에서 나고 자랐다. 성의 철자도 Acemoğlu로 g 위에 특수기호가 있다. 이를 터키식으로 발음하면 ‘앋체모을루’ 정도에 가까운 것 같다. 발음을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 한글로 썼을 때 보기 좋게(?) 줄여서 이 글에서는 “아체몰루”로 썼다. 고등학교 때까지 터키에 살던 다론 아체몰루는 대학교는 (학부, 석사, 박사 모두) 영국에서 다녔고, 이후 런던정경대에서 가르치다가 1993년부터 지금까지 30년 넘게 미국(M.I.T.)에서 살았다.
학계에선 영어식 발음으로 불리다 보니, 본인도 영어식 ‘대런 아세모글루’로 불리는 데 별 거부감이 없어 보인다. 번역서에도 저자 이름을 영어식으로 썼다. 본인이 특정 발음을 선호한다고 밝히지 않는 한 이건 정답이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저 ‘Inkeun’을 그 누구도 ‘인근’이라고 불러주지 못하는 데서 사는 게 이따금 속상해지는 이방인의 소심한 한풀이를 표기에 담았다고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길.
에피소드 예고
아체몰루 교수는 앞에도 썼다시피, 이미 “노벨 경제학상은 따 놓은 당상”으로 평가받던 사람이다. 베스트셀러가 된 여러 편의 책을 썼고, 히트를 친 논문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다. EBS에서 시리즈로 방영한 “위대한 수업”을 참 좋아하는데, 거기도 나와서 자신의 연구를 자세히 소개했다.
아체몰루 교수뿐 아니라, 이번 노벨상 수상자의 면면은 연구 업적과 작품 세계, 그리고 관련해 나오는 이야기까지 아메리카노가 뭔가 말을 보태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기 힘든 이들로 채워졌다. 그래서 이번 주 중에 구상을 마치고 특별 에피소드를 한 편 더 녹화하려 한다. (선거 관련 소식도 짚어볼 게 자꾸 쌓이고 있지만, 그래도 이 이야기는 지금 아니면 못 할 것 같아서…)
먼저 과학상, 특히 물리학상과 화학상은 인공지능 연구자들이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했다. 이야말로 아메리카노의 과학기술 전문가인 NYU 컴퓨터과학과의 조경현 교수를 모시고 이야기를 짚어보기 안성맞춤인 주제다.
한강 작가의 수상에 관해선 이미 국내에서 훌륭한 분석과 평론이 쏟아져나오고 있기에 굳이 이해도 얕으면서 함부로 작품에 대한 보태는 건 큰 의미가 없겠으나, 뉴스페퍼민트 시절부터 넓은 의미에서 관심이 갈 수밖에 없던 번역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특히 “소년이 온다”를 데보라 스미스 씨가 어떻게 번역하고 소개했는지 짚어보면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지난 주말 뉴욕에 갔을 땐 서점 세 군데를 뒤져도 책을 못 찾았는데, 오히려 프린스턴 서점에는 이르면 내일이면 번역서가 들어온다고 한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기계번역이 시와 같은 함축적인 언어나 사투리처럼 데이터가 상대적으로 적은 언어도 알맞게 번역할 수 있는지도 궁금한데, 이건 조경현 교수에게 추가로 물어봐도 좋겠다.
그리고 경제학상의 의미도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아주 가까이에 있다. 바로 아메리카노의 정치통 유혜영 교수다. 정치학 안에서도 세부 전공으로 미국 정치, 정치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설명해 주는 “정치경제학자” 아체몰루, 로빈슨, 존슨 교수의 연구는 귀한 자료가 될 것이다.
정리해 놓고 나니 제법 설렌다. 그러나 뭐든 아이디어보다 실행이 중요한 법. 얼른 다음 에피소드로 찾아뵙도록 하겠다.
아, 참고로 지난번에 “적당히 좋은 부모(good enough parenting)”에 관해 나종호 교수와 나눈 이야기가 반응이 좋았어서 한 편을 추가로 또 찍었다! 지금 열심히 편집 중인데, 이번 주 안에 업로드할 예정이다. 뉴욕타임스 데일리 팟캐스트에서도 꼭 같은 이야기를 얼마 전에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아메리카노의 설명이 더 좋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미처 짚지 못했던 점도 있어 프린스턴에서 온 편지에 조만간 자세히 써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