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타이밍에 다시 열리는 미국 정부
민주당 상원의원 8명은 왜 지금 '타협'을 선택했을까?
원래 이번 주 첫 번째 글은 지난주 대법원에서 열린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에 대한 심리, 구두변론 이야기를 쓸 생각이었습니다. (뉴욕타임스에서 대법원을 담당하는 아담 립택 기자가 데일리 팟캐스트에 출연해 배경을 설명하며 맥락을 짚었는데, 팟캐스트 내용만 그대로 정리해도 될 만큼 “믿고 보는 립택 기자”의 설명이니, 제가 정리해서 쓰기 전에 먼저 들어보실 분은 직접 들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그런데 일요일 밤에 갑자기 느닷없는(?) 속보가 나옵니다. 민주당 상원의원 8명이 “건강보험 개혁법(오바마케어) 보조금 지급 연장 없이는 셧다운을 끝내는 협상도 없다”는 당론을 거슬러 공화당과 정부를 다시 여는 데 거의 합의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정부 폐쇄가 2주째 접어들던 시점에 보내드린 위의 뉴스레터에 써드렸듯 블룸버그가 전망한 5가지 시나리오 가운데 ‘민주당 내분’ 시나리오가 펼쳐진 겁니다.

모든 연방정부 폐쇄가 그렇듯 이번 셧다운도 의회가 예산안에 합의하지 못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상·하원 모두 공화당이 다수당이긴 하지만, 상원에서는 의원 한 명이 논의를 무기한 지연시키는 필리버스터(filibuster)가 있어서 야당인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단결하는 한 정부를 다시 열기 위한 예산안 투표는 표결에 부치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건강보험 보조금을 지키기 위한 상원 민주당 의원들의 단결”은 지난 한 달 넘게 트럼프 대통령이 자기 멋대로 정책을 펴지 못하게 막는 최후의 보루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여전히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지난주 ‘미니 중간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연방정부 셧다운으로 인한 갖은 불편과 피해를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탓으로 돌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상원의원 8명이 공화당과 손을 잡고 필리버스터라는 궁극의 장애물을 치워주기로 합의한 겁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교착상태, 수렁에 빠진 듯하던 상원은 곧바로 예산안을 찬성 60, 반대 40표로 통과시켰고, 이변이 없는 한 하원도 곧바로 이를 통과시켜 미국 연방정부는 곧 다시 운영을 재개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협의를 “뜻밖의 타이밍”, “느닷없다”고 표현한 건 민주당의 ‘버티기 전략’이 한 달 넘게 잘 통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요일 밤에 처음 속보를 보고 바로 글 타래를 열어 써 둔 제목과 부제에는 ‘배신’, ‘굴복’ 같은 단어가 있었습니다. 오바마케어 보조금을 보장받는 데는 아무런 진전을 못 이루고 공화당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들어주기만 한 협상 타결을 이해할 수 없었죠. (지금도 누군가 해당 의원 8명의 결정이 ‘좋은 결정’이었는지 묻는다면, 저는 아니라고 답할 것 같습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이번 결정과 협의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실마리를 찾다가 에즈라 클라인의 (아마도 속보가 나오자마자 재빨리 썼을) 칼럼을 읽었습니다. 처음 올라온 글의 제목은 “민주당 (의원들)은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걸까? (What Were Democrats Thinking?)”이었습니다. 지금은 좀 더 풀어 쓴 제목으로 바꿨습니다. “민주당은 셧다운을 둘러싼 공방에서 이기고 있었는데, 왜 양보한 걸까?”입니다.
에즈라 클라인 칼럼: Democrats Were Winning the Shutdown. Why Did They Fold?
선거에 참여하는 유권자는 자기 처지에 따라 표를 던짐으로써 정치적 의견을 냅니다. 저 같은 관찰자도 마찬가진데, 아무래도 내 처지와 관점에서 정치인들의 결정과 정책을 분석하고 평가할 수밖에 없죠. 유권자는 자기 이해관계와 의견에 따라 투표하는 게 당연하지만, 정치를 분석하는 관찰자라면 나를 ‘내려놓고’, 내 처지를 ‘잠시 잊고’ 상황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절친 나종호 교수가 책에 인용한 표현을 빌리자면, “타인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는” 훈련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에즈라 클라인의 칼럼은 그 훈련에 도움이 됐습니다. 칼럼을 번역하고, 문단과 문단 사이에 제 생각, 의견(이탤릭체)을 덧붙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