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미국을 알아가는 시간” 아메리카노를 진행하고 있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송인근입니다.
편지 한 통에 쭉 정리해 보려던 반전(反戰) 시위 이야기에 자꾸 살이 붙어서 편지를 쓰다가 적당히 매듭지어 한 편을 먼저 보내드렸고, 곧바로 이어서 글을 씁니다.
저는 글 쓸 때 말고 말을 할 때도 이야기가 자꾸 샛길로 새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소재의 연원을 찾아 역사 속에 풍덩 빠졌다 나오곤 합니다. 그래서 글이건 말이건 군더더기 없이 논리정연하게 정돈된 걸 좋아하는 유혜영 교수님께 종종 핀잔을 듣기도 하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못 담고 대충 마무리했을 때의 찝찝함을 싫어하는 제 성정에 맞춰서 이번 이야기는 자세히 정리해 보려 합니다.
4월 17일. 하원 교육위원회는 컬럼비아대학교 네맛 샤픽(Nemat (Minouche) Shafik) 총장과 이사들을 증인으로 초청해 반유대주의 청문회를 열었다. 4개월 전에는 운 좋게(?) 초청을 거절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하마스의 테러 공격 이후 컬럼비아대학교에서도 반유대주의로 지탄받을 사건이 몇 차례 일어났다. 국민들 보는 앞에서 자초지종을 밝히라는 의원들의 속내는 다른 데 있어 보였지만, 어쨌든 샤픽 총장으로서는 가지 않고 버틸 명분도, 도리도 없었다. 청문회의 막전 막후는 뉴욕타임스 데일리 팟캐스트에 잘 정리돼 있다. 이 글도 해당 에피소드를 많이 참고했음을 밝혀둔다.
반유대주의란 무엇인가
샤픽 총장은 4개월 전 다른 총장들이 고초를 겪으며 남겨 준 청문회 오답 노트를 달달 외며 준비한 듯했다. 이른바 ‘답정너 질문’에는 의원들이 원하는 답을 조금도 머뭇거림 없이 내놓았다. 샤픽 총장은 “이스라엘과 유대인 학생을 향한 혐오 발언, 괴롭힘, 차별을 강력히 규탄”했으며, 교내에서 일어난 반유대주의 시위, 유대인을 향한 혐오 발언과 폭력에 컬럼비아는 철저한 불관용 원칙을 견지할 것이라고 단호한 어조로 거듭 말했다.
‘답정너 질문’과 답변은 예상할 수 있던 만큼 약속 대련을 보는 듯했다. 대신 오답 노트에 없던 ‘심화학습 문제’에서 샤픽 총장이 몇 차례 위기를 맞았는데, 그게 이 날 청문회의 하이라이트가 됐다. 특히 컬럼비아대학교 중동·남아시아·아프리카학과(MESAAS)의 조셉 마사드 교수의 처분에 관한 의원들의 ‘압박 질문’이 샤픽 총장과 컬럼비아대학교 이사진의 정곡을 찔렀다. 질의응답을 편집해 추린 영상 두 편을 가져왔다.
요르단 태생인 조셉 마사드 교수는 서구 열강의 식민 지배와 20세기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의 건국 과정 등 지역 근현대사를 연구한 역사학자이자 정치학자로, 시온주의를 비롯한 유대교와 이스라엘 사회의 극우 정치 사조를 강력히 비판하며 팔레스타인과 아랍 시민들이 받는 차별을 지적해 왔다.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 민중의 관점에서 역사를 해석한 그의 저서와 연구는 발표될 때마다 적잖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보기에 따라 마사드의 주장을 급진적으로 볼 소지는 다분하다. 그래도 논란의 여파는 대부분 학계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하마스가 테러 공격을 벌인 이튿날 그가 일렉트로닉 인티파다(The Electronic Intifada)라는 매체에 쓴 칼럼은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후폭풍을 낳았다. 테러 공격에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이를 찬양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표현을 잇달아 썼기 때문이다. 마사드 교수를 컬럼비아대학교는 물론 학계에서 제명해야 한다는 청원에 일주일 만에 5만 명 가까운 사람이 서명했다. (현재는 그 숫자가 8만 명으로 늘었다.)
무엇이 반유대주의(anti-semitism)인지 규정하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다. 반유대주의가 무엇인지를 명문화해서 이를 어기면 처벌한다고 명시한 반유대주의 인식법이 하원에서 찬성 320 대 반대 91이라는 압도적인 표 차이로 통과됐지만, 이 법안이 상원을 통과하고 대통령의 재가를 얻어 법이 될지는 미지수이며, 설사 법이 제정되더라도 반유대주의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마련됐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챗GPT한테 마사드 교수의 칼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Would you categorize this column as an antisemitic?(이 칼럼을 반유대주의로 볼 거니?)”라고 물었다. 거대언어모델은 예상대로 몸을 사렸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안철수식 답변이다. 답변을 한 화면에 담으려고 첫 문단에 언급된 일반론은 뺐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어떤 글이 반유대주의인지 판단하려면 그 글의 언어, 내용, 그리고 그것이 제시된 맥락을 분석해야 합니다. 반유대주의는 일반적으로 유대인에 대한 적대감, 편견 또는 차별을 의미합니다. 글이 유대인 집단에 대한 해로운 스테레오타입을 촉진하거나, 홀로코스트를 부인하거나,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국가보다 이스라엘에 더 충성한다고 비난하거나, 유대인에 대한 해로운 신화(예: 세계 금융을 통제한다는 신화)를 사용한다면 반유대주의적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 챗GPT
사실 세상만사 가운데 단정적으로 어떻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 대부분이라서 신중하게 접근하는 편이 나을 때가 많다. 그러나 이번엔 내 생각은 좀 다르다. 표현의 자유 원칙에 따라 보호하기가 도저히 어려울 정도로 폭력을 찬양하는 부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반유대주의 사상이 담겼느냐 아니냐를 두고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폭력을 부추기고 찬양하는 혐오 발언으로 보기에는 충분한, 그래서 위험한 글이다. 특히 1천 명 넘는 민간인을 하루 만에 살해한 직후에 이를 갑자기 거시적인 관점에서 팔레스타인 민중의 정당한 저항으로 포장하는 건 유대인을 비인간화(dehumanizing)하는 처사다.
진퇴양난
청문회의 하이라이트를 설명하기 위해 맥락과 배경을 소개하다가 글이 길어졌는데, 아무튼 문제의 칼럼을 쓴 조셉 마사드 교수를 둘러싼 컬럼비아대학교의 처분이 청문회의 쟁점이 됐다. 샤픽 총장은 한쪽을 택하면 다른 쪽은 성립되지 않는 서로 모순된 상황, 딜레마, 진퇴양난에 빠진다.
마사드 교수의 처분에 관해 먼저 질문한 건 팀 왈버그(Tim Walberg, 공화, 미시건) 의원이었다. 왈버그 의원은 마사드 교수가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정년을 보장받은 교수(tenured professor)이자, 문리과대학 학술위원회(academic review committee)의 장을 맡고 있다”며, 포문을 열었다.
“칼럼의 구절을 몇 군데 인용합니다. “[이번 공격은] 팔레스타인 인민들의 혁신적인 저항의 개가”라고 추켜세웠어요. 이어 이스라엘 국민 1,200을 살해한 끔찍한 전쟁 범죄를 “멋지다, 놀랍다, 믿을 수 없이 훌륭하다”고 표현했죠. 자, 샤픽 총장님은 얼마 전에 컬럼비아대학교 구성원 누구라도 테러와 폭력을 부추기거나 사용해선 안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마사드의 발언을 규탄하십니까? 이 사람 이런 말을 하고도 응당한 대가를 치렀나요?”
샤픽 총장은 단호히 말했다.
“네,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발언을 규탄합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징계를 내렸는지에 관한 추궁이 이어지자, 답변이 꼬였다.
“어떤 대가를 치렀죠? 징계를 받았나요? 아직도 계속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건 아닌가요?”
“그 부분에 있어서는 학칙에 따라 해당 교수에게 통지가 됐고 조사가 진행 중일 테고, 문리과대학 학술위원장을 비롯한 행정 부문장 역할은 이미 취소됐을 겁니다.”
답변하는 샤픽 총장의 표정은 자신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스테파닉 의원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두 번째 영상 1분 50초부터)
“총장님, 아까 (왈버그 의원님의 질의에 대한) 답변 중에 마사드 교수가 문리과대학 학술위원장 자리에서 내려왔을 거라고 하셨죠? 제가 지금 컬럼비아대학교 홈페이지 가보니까 아직 학술위원 명단에 그대로 있는데요? 어떻게 된 거죠?”
제대로 된 해명이 나올 수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때까지 실은 별다른 조처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물쭈물하는 샤픽 총장에게 스테파닉 의원은 최후의 일격을 가한다.
“그럼 이 자리에서 당장 마사드 교수를 학술위원회에서 제명하겠다고 약속하실 수 있겠어요?”
“어, 그건… 그건요, 규정을 확인해서… 그러니까… 네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
“좋아요. 하겠다고 약속하신 거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마사드 교수는 학술위원장 자리에서 곧 축출되는 겁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하버드, 펜실베니아대학교에 비해 훨씬 더 단호한 의지를 보여준 컬럼비아대학교를 향해 공화당 의원들이 찬사를 보냈다. “맥락을 살펴야 한다는 궤변 없이 반유대주의를 단호히 배격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 축하 속에 청문회는 마무리됐다.
샤픽 총장은 슬기롭게 대처한 걸까? 일단 청문회라는 고비는 넘겼지만, 의회에서 한 말에 책임을 지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샤픽 총장이 청문회에 간 바로 그날 동이 틀 무렵, 컬럼비아대학교 학생들이 캠퍼스에서 팔레스타인을 향한 지지와 연대를 표하며 농성에 돌입했다. 시위대는 총장이 자신들의 주장을 왜곡한 데 실망했으며, 공화당 의원이 짜놓은 프레임에 갇혀 학교 구성원의 권리를 지켜주기는커녕 이를 팔아넘긴 총장과 이사진에 분노하는 이들도 있었다.
샤픽 총장은 적어도 공화당 의원들 앞에서는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반유대주의를 좌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컬럼비아 캠퍼스에서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친팔레스타인 농성장이 세워졌다. 청문회에서 한 약속을 지키려면 농성장을 힘으로라도 철거해야 했는데, 이는 표현의 자유를 대놓고 억누른 사례로 남을 수도 있었다.
시위대의 요구
결국, 핵심은 시위대의 주장과 요구가 표현의 자유에 따라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인지, 아니면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 줄 가치가 없는 혐오발언인지에 달렸다. 이번 사태를 판단하기 가장 어려운 지점도 바로 이거다. 한편으로는 전쟁을 멈추라, 총을 거두라, 사람 목숨을 살리자는 말이 도대체 어디가 문제인지 모르겠는데, 또 한편에서는 그 말이 곧 인종청소를 부추기고 찬양하는 말이라며 치를 떤다. 공통 분모를 찾기가 정말이지 너무 어렵다.
시위대의 주요 요구사항을 살펴보자. 미국 전역의 수백 개 대학으로 퍼진 시위대의 요구는 대체로 같다. “Disclose, divest, we will not stop, we will not rest!” 이 요구가 처음 울려 퍼진 곳도 컬럼비아대학교다. 핵심은 명단을 공개하고(disclose), 투자를 철회(divest)하라는 건데, 정확히 말하면 학교 기금을 어디에 투자하고 있는지 그 명단을 공개하고, 그 가운데 이번 전쟁으로 이익을 보는 기업이나 펀드에 투자한 돈이 있으면 이를 철회하라는 거다.
미국의 소위 명문대학들은 대개 상당한 규모의 기금을 쌓아두고 있다. 동문이 내는 기부금이 기금의 원천인데, 대학들은 이 기금으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교수들에게 연구비를 지급하며, 강의실을 짓고 실험실을 확장한다. 기금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기금을 적절한 데 투자해 효과적으로 운용하는 일이 어쩌면 더 중요하다.
미국 대학생들은 전쟁을 막기 위해 돈줄을 압박하는 전략을 택했다. 사실 대단히 미국 대학생다운 발상이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기금의 투자처를 공개하고 철회하는 일이 생각만큼 간단치 않다는 지적도 끊임없이 나온다. 실제로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고려하지 않은 채 이상만 좇으며 외치는 무책임한 요구라는 비판도 있다.
시위대의 요구사항이 효과적인지를 두고는 의견이 갈릴 수 있다. 그러나 시위대의 반전 구호 자체를 반유대주의라고 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대표적인 구호 중 하나가 “강에서 바다까지 팔레스타인은 아랍 사람들의 땅”이라는 구호다. “강에서 바다까지” 부분만 줄여서 쓰기도 한다.
여기서 강은 요르단강, 바다는 지중해를 뜻한다. 현재 이스라엘 땅이다. 유대인들은 이 땅이 아랍 사람들의 땅이라며, 여기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해방을 외치는 건 곧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우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반유대주의 혐오 발언인 셈이다. 나는 이 해석이 지나치다고 생각하지만, (잠재적인) 피해자가 그렇게 느낀다면 어쩔 수 없다. 이 말이 혐오 발언이냐 아니냐를 두고는 유대인과 아랍인 사이에서 아마도 의견이 가장 극명하게 갈릴 거다.
표현의 자유와 혐오 발언 사이에서 캠퍼스 시위대는 여전히 학교 측과, 나아가 전체 사회와 대치하고 있다. 샤픽 총장은 청문회에서 한 약속을 지키고자 공권력의 투입을 요청해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해 버린다. 이후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미국 내 대학 캠퍼스 수백 곳에서 반전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