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포스트가 이번 대선에서 공식적으로 후보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워싱터포스트의 발행인이자 CEO 윌리엄 루이스는 독자에게 쓰는 편지에서 이번 대선을 포함해 앞으로 선거에서도 지지 후보를 천명하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루이스 발행인은 이어 이번 결정이 “신문의 본령으로 돌아가는 것(returning to our roots)”이라며, 지난 1960년 대선을 앞두고 워싱턴포스트 논설위원실(Editorial Board)이 쓴 칼럼을 인용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어느 후보도 ‘지지’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의 전통이며, 최근 여섯 차례 선거 중 다섯 차례 우리가 취한 결정과도 일치한다. 1952년에는 선거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공화당 경선과 대통령 선거 본선에서 예외적으로 아이젠하워 장군을 지지했다. 돌이켜보면 그의 후보 지명과 대통령 선거에서 내세운 공약은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의 수도에 있는 독립적인 신문으로서 공식적으로 한쪽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편이 더 현명한 결정이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루이스 발행인은 이어 이번 결정이 신문사가 지켜 온 가치와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이 결정이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지지를 표명하지 않음으로써) 특정 후보를 암묵적으로 지지한다는 오해를 살 수도, 다른 후보를 비판하고 부정하는 것으로 읽힐 수도 있으며, 언론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도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결정은 워싱턴포스트가 늘 지켜온 가치와 일치한다. 또 우리가 바라는 리더의 자질, 즉 품격과 용기를 품고 미국적 가치를 위해 헌신하며, 법치를 존중하고 모든 면에서 인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데도 부합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또한, 어쩌면 일생일대 가장 중요한 이번 선거에서 누구를 다음 대통령으로 뽑을지 독자들이 스스로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다고 믿는다.
워싱턴포스트의 역할은 불편부당한 취재, 보도 원칙을 통해 모든 독자에게 공정한 뉴스를 제공하고, 독자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돕는 일이다. 또한, 논설위원실의 역할은 독자들의 생각을 자극하는 의견을 전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나라의 수도에 있는 신문으로서 우리의 가장 큰 역할은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1980년부터 지금까지 단 한 차례(1988년) 선거를 제외하고, 대선에서 매번 민주당 후보를 지지해 왔다. 2020년에는 조 바이든을, 2016년에도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다. 또 이번 선거에서도 D.C.와 인접한 메릴랜드주 상원 선거에서 민주당 안젤라 얼소브룩스 후보를 공개 지지하기도 했다. 편집위원회의 이번 결정에는 2013년 신문사를 인수한 제프 베조스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평가가 많다. 이에 편집국 기자들과 논설위원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앞서 LA타임스의 마리엘 가르자 논설위원실장도 신문사가 해리스 지지를 차단한 데 항의해 사의를 표명했다. LA타임스는 지난 2018년 외과 의사이자, 항암제 제약회사를 차린 부호 패트릭 순숑이 인수했다.
가르자는 컬럼비아 저널리즘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대선을 앞두고 신문사 논설위원실 명의로 카말라 해리스 지지를 표명하려 했으나 사주 순숑을 포함한 윗선이 이를 차단했다며, “침묵에 동의할 수 없어 논설위원실장직을 사임한다”고 밝혔다. 가르자는 “위험한 시기에 정직한 사람들은 일어나 싸워야 한다. 이게 내가 싸우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LA타임스도 다른 선거에 관한 신문사의 지지 또는 반대 의사는 밝혔지만, 해당 기사에 대통령 후보에 관한 언급은 없었다. 사주인 순숑은 논설위원실에 각 후보 정책의 장단점을 고루 살피는 중립적인 글을 쓰라고 제안했다고 해명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더 좋은 후보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유도하고자 했지만, 논설위원실이 이를 거부했다며, 가르자를 포함한 논설위원들의 사의도 받아들인다고 덧붙였다.
가르자 실장에 이어 카린 클라인과 로버트 그린 등 논설위원들이 추가로 LA 타임스를 떠난다고 발표했다. 클라인은 중립적인 글을 쓰라는 사측의 제안은 “사실상 논설위원실의 목소리를 억누른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